본고는 원대 번국간의 사신 왕래에서 역참제도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고려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 연구이다. 『원전장』의 ‘급역’ 조항에서 보듯이 역참에서 포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증빙으로서 ‘패부’를 소지해야 했다. 이러한 ‘급역’ 방식은 당시 고려의 역참에도 적용되었다. 특히 충렬왕 시기 탈탈화손이 파견되어 그가 포마차자를 발급하게 되면서 고려의 역참은 원의 역참 체제하에 속하게 되었다. 원조는 고려와 같은 번국에 많은 공물을 요구하였고, 고려에서는 공납을 바치기 위해 수차례 원에 입조하였다. 원이 고려에 역참을 설치한 이유 역시 일본 원정을 차치한다면 고려에 대한 인적·물적 자원의 장악에 있었다. 이렇게 역참을 통해 원조는 주변 번국과 효과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고, 속국에 대한 지배 역시 강화할 수 있었다. 고려는 원의 법제를 그대로 수용하기 않았고 고려왕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완화된 지배를 받았지만, 역참제도에 있어서는 원조 역참의 한 부분으로 소속되었다. 이런 점에서 원조가 고려를 장기간 정치적 지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려에 대한 교통·통신망의 확보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This paper is a study of how the postal-relay system was operated when the Yuan(元) Empire exchanges with foreign countries through diplomatic envoys, especially focuse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ryeo(高麗) Dynasty. In order to use the postal-relay system facilities, as in the regulation of Yuandianzhang(元典章), every dispatched envoys had to carry the paizas with appropriate seals and signatures. This mode of operation was also applied to the postal-relay system of the Goryeo. In particular, in the reign of King Chungryol, the Yuan empire dispatched ‘Postal Inspectors’ called todkhosun(脫脫禾孫), and as he issued postal documents(鋪馬箚子), the Goryeo’s postal-relay was included in the original system of the Yuan’s postal-relay. The Yuan demanded to offer tribute to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the Goryeo. The Goryeo dispatched diplomatic envoys to the Yuan several times in order to dedicate tribute. The Yuan was able to effectively communicate with neighboring countries using the postal-relay system, and was able to govern the politically controlled countries more efficiently. In the background of the Yuan’s continued political interference with the Goryeo for a long period, the securing of the Goryeo’s transportation and communication network were important fact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