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목간의 편년은 넓게 보면 1260~1268년이고 보다 좁혀 보면 1264~1268년이며, 이는 高麗武人政權중에서 金俊政權期(1258~1268)에 해당한다. 목간에서는 김준정권의 성격을 해명할 수 있는 중요한 글귀가 적혀 있다. 그러한 글귀들은 “右三番別抄”, “右三番別抄都領侍郞”, “重房右番”, “金侍郞” 등이며, 이러한 글귀들을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우삼번별초”는 우별초 중 제3번째 별초가 아니라 우별초 전체규모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보았다. 우삼번별초는 우별초가 3개의 별초부대로 구성되었고 삼별초 수효가 많았음을 알려준다. 다음으로, “우삼번별초도령시랑”은 우별초의 도령 장군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였다. 김준정권 당시 우별초 장군으로는 白永貞, 李劑, 康保忠등이 그 후보로서 지목되었다. 한편, “중방우번”은 중방의 右番으로 파악해 보았다. 이를 통해서 김준정권 당시 중방이 우번과 좌번으로 분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김준정권 시기에 이르러 초기 무인정권(이의방~이의민정권) 시절의 중방의 기능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해석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김시랑”은 ‘金將軍’과 같은 의미이며 김준의 측근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견지에서, 김장군은 김준의 둘째 부인 소생인 金祺?金靖중 한인물임이 확실하였다.
society. Especially, our society was influenced by a Confucius for a long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