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김대규의 시 세계에서 드러난 문학적 변화 양상과 그의 시에서 발현되는 주제의 표현 방식을 탐구한 것이다. 문학과 사람과 삶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김대규의 작가적 신념은 작품 세계에 일관되게 작동하는 주제다. 이러한 주제는 주체와 타자 사이에 생성되는 관계적 측면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확장되어 김대규의 시 세계를 형성한다. 김대규의 시에서 실존적 타자는 갈등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사랑과 위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의 타자 존재론은 아포리즘 문학, 뿌리 문학, 패러디 문학 등 세 유형의 지향점을 형성한다. 아포리즘 문학은 잠언적 언술로 사랑의 시학을 형상화했으며 일반적인 타자를 대상화한다. 토착적 정서와 원형회귀의 상징인 흙을 주제로 설정한 뿌리 문학에서는 어머니, 가족, 자연을 대상화한 실존적 타자가 나타난다. 이는 김대규 시 세계에 등장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타자라는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임을 보여 준다. 김대규가 패러디를 차용한 인물시를 많이 창작했다는 점도 이를 입증한다. 이와 같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관계론은 김대규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김대규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입문한 시기인 1960년〜1970년대에 쓰여진 작품은 모더니즘 경향이 농후하다. 형식적 측면에서 기존의 관념화된 전통시를 타파하고 실험적 형태의 시와 시나리오, 희곡, 공고문 등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독창적 시작법을 추구했다. 내용 면에서는 풍자와 해학으로 현실을 비판하거나, 물질문명의 폐습 타파, 전쟁 부정의 역사 인식, 평화지향의 휴머니즘 등 혁신적 이념을 수용했다. 이처럼 김대규의 초기 시는 야누스적 성격을 띤다. 시적 대상에 다가가는 동일성의 원리를 수용하는 전통적 서정시와, 사회 부조리와 불의에 대한 냉철한 이성적 비판과 풍자와 해학의 모더니즘 시가 양립한다.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 파괴는 인간성 상실과 허무 의식을 불러왔다. 그로 인해 문학계에서는 니힐리즘(Nihilism)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규의 허무주의에는 그와는 다른 현실 인식과 사유가 존재한다. 그의 시는 비관적이거나 허무적 인식에 매몰되지 않았으며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도 않다.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다. 그의 시에는 초월적 의지를 견인하는 변별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머니, 가족, 주변인, 문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랑을 모티브로 한 ‘관계의 미학’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허무 의식은 흙과 자연에서 상쇄되어 초월적 극복의 힘으로 작용한다. 순수 고독과 순수 허무, 물아일체는 사랑의 시학으로 구현되는 김대규 시세계의 중요한 주제였다. 아울러 다양한 시적 변화 양상을 통해 혁신적 모더니즘을 추구하면서 여러 형태로 시각화된 실험시 등 독창적 시작법도 김대규 시의 특징이다. 혼돈과 열정의 초․중기 문학을 지나 후기 문학에 이르러 김대규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시대적 배경을 맞는다. 인생 주기로는 노년기에 접어든 시기에 김대규의 시세계는 죽음을 바라보는 자아 성찰적 시각과 초월적이며 관조적인 양상으로 변모해 간다. 김대규의 시는 지극히 평이하며 화려한 비유법을 활용하지 않는다. 대신 정곡을 찌르는 유머와 재치, 함축된 언어를 구사하는 문장적 특징이 있다. 김대규는 평생 추구해온 주제인 사랑의 소통 방식을 문장적 특징을 살려 작품으로 구현했다. 인간과 문학,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미학적 가치를 새로운 형식의 문학으로 실현한 것이었다. 주제어 : 아포리즘, 패러디, 사랑, 풍자, 해학,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