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nyeo sijo represents gineyo poets’ special emotions and bears their unique disposition throughout its formations and content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expressive modality of love contained in female’s literary works in the feudal society of Joseon, by selecting ginyeo sijo as a study subject. Ginyeo sijo in Joseon society was very small in its quantity, but many of them was highly evaluated for their quality. Its contents were closely related to ginyeo’s social status-oriented experience, such as loneliness, speculation, meeting, separation, betrayal and sense of affection & resentment. In this study, the author examined ginyeos’ suffering and the methods with which they projected the suffering on sijo works. In this way, the author looked into how their lyrical ego was embodied. Sijo was a genre of singing and therefore men inevitably took the lead in it, but gineyos enjoyed more freedom with it than other female classes did, due to their social status. Ginyeo sijo embodied not the conceptual Confucian ideology, but ginyeos’ life, value system and dreamy world of love, graphically. Based on the sijo of Hwang Jin-i, Hong Lang, Gu Ji, Song Yi, Kang Gang-wol and Mun Hyang, it seemed to be clear that ginyeos tried to take lead in the situation of love and separation considerably. Hwang Jin-i, Bu Dong and Kang Gang-wol actively expressed love to noble bureaucrats. Hwang Jin-i is very famous with her sijo and life anecdotes. Mun Hyang rather wanted to find out a new lover, without cling to a departing ex-lover. Her attitude was somewhat different from the contemporary female image. Her attitude that ‘Under the sun, are you the only man? There are always someone who love me’ wa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ordinary women who appealed with tears at the time of separation and then kept up waiting for the departed lover. Gu Ji and Song Yi said to their lover they would keep their chastity, no matter what temptation there might be. Song Yi compared her integrity to a pine tree, whereas Gu Ji depicted herself as a boat floating on Daedonggang River and her lover as a willow branch that binding her, thus expressing her everlasting love. In addition, Hong Lang took an active action for her love with Choe Gyeong-chang. She asked him to recollect her upon seeing the wild willow planted outside the window, though they departed. Her love even to death is still touching for the present. The above attitudes, presented in ginyeo sijo, well represent ginyeos’ unrestricted and independent emotions, in spite of their inevitable status of entertaining noblemen. Although they belonged to the lowest class in the Joseon society, they played the leading role in love and separation according to their will. When a person embodies his lyrical emotions by his frank language, literature can make people deeply moved. Bloomed by ginyeos in the Joseon society, ginyeo sijo demolished the wall of nobleman-centered sijo and enriched literary sensitivity all the more. It seems to be valuable to examine how ginyeos’ life and love were embodied into sijo in the male-centered feudal society of Joseon.
妓女時調는 기녀라는 작가군의 특수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작품으로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본 논문은 封建社會인 조선시대의 여성 문학 중에서 妓女時調를 대상으로 作品속에 內在된 愛情의 표출양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사회에서 살아가는 妓女들이 시조의 작품이 양적으로서는 매우 적었지만 질적인 면에서 봤을 때는 비교적인 높은 작품으로 평가됐다. 그 내용상은 대체로 기녀이기 때문에 겪었어야 했던 孤獨, 思念, 相見, 離別, 背叛, 情恨의 愛情 등이 주류를 이루며, 아픔을 겪었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시속에서 어떻게 그 투영시켜서 있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했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 안에서 그녀들의 서정적인 자아가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時調가 그의 장르적 특수성상 가창이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남성에는 의해서 주도됐을 수밖에 없지만, 그 다른 계층의 여성들이 보다 신분상적인 자유롭게 있었던 妓女들에 의해서 향유됐을 수 있었다. 기녀들이 時調 통해서 관념적인 유교적 이념을 형상화했기보다는, 그 당시를 살아간 그들의 삶과 가치관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꿈꾸던 사랑이 세계가 더욱 생생하게 표현했을 수 있었다. 黃眞伊, 求之, 洪娘, 康江月, 松伊, 文香 등의 時調를 통해서 살펴보듯이 그들은 사랑과의 이별 상황에서는 상당한 주체적으로 행동했 어려 했었던 그 것은 알알 수 있었다. 黃眞伊와 夫同, 康江月은 士大夫 관료들이 향하여 적극적인 그 사랑을 표현한다. 黃眞伊가 그녀의 그 시조와의 더불어 그의 생애와의 관련된 그 일화로 더 유명하다. 黃眞伊의 생애와 그녀들의 시조에서 보이는 그 삶과 정서는 그 조선시대 妓女의 그 당당한 자태를 보여준다. 文香 등들은 자신이 떠난 상대에게는 연연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롭게 님을 찾았겠다고 하였다. 이런 그녀의 태도를 당시의 일반적 여성상과 거리가 있었다. 하늘에 아래 남자를 너뿐이 나며 나의를 사랑해 줄 사람을 없었겠냐는 태도를 이별 상황에서는 눈물이 호소하며 떠난 님을 기다린 여타의 여인들과 사뭇ㅇ 다르다. 松伊와 求之는 님에게 자신이 유혹하는 다른 손길이 있었어도 오로지 않게 님을 위해 貞操 지키겠다고 하였었다. 松伊가 자신의 절개를 소나무에서 빗대어 표현했었으며, 求之를 자신이 대동강에서 떠 있는 배로 표현된다. 님을 자신이 묶고 있는 버들가지에는 비유하여 변치 않게 자신의 마음이 노래했었다. 또한 그 洪娘은 崔慶昌과의는 사랑을 위해서 적극적인 행동하는 그 등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들은 비록 헤어지더라도 창 밖에 심어둔 묏버들을 보며 자신을 생각해 달라고 하였다. 죽을 때까지 불사하는 그녀들의 사랑이 오늘날에서도 감동적인 남아있었다. 妓女들이 신분상을 천민이지만, 양반으로 부터는 애정이 받는 대상이었었기에 이런 활동을 가능했었던 것으로 보았다. 妓女時調에서는 본 위와 같은 태도를 비록 그들이 士大夫를 즐겁게 했어야 한 신분상이지만, 그들의 자유로움 자주적 정서를 잘 보여준다. 이에는 조선시대에 살아가는 그 가장 최하층의 신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보다 이별과 사랑에 주체적이었었던 그들의 의지를 나타내었음을 볼 수 있었다. 문학은 개인의 서정적인 감정을 솔직한 자신의 언어로 형상화할 때 더욱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조선시대 妓女들에 의해 꽃을 피웠던 妓女時調들은 士大夫 남성 위주의 時調라는 벽을 허물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남성의 중심적인 봉건적 사회의 속에서 당시대를 살아가는 기녀들의 삶과 그 사랑을 어떻게 時調의 속에 형상화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자체로서 가치를 있었다는 점에 더 높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