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蓮坡 金進洙(1797~1865)가 1832년 冬至兼謝恩使行의 견문을 소재로 저술한 燕行詩集 『碧蘆集』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漢詩+自註+詩評’의 복합적인 텍스트 결합 방식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문헌 인용 양상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김진수의 작가 의식과 그것이 구현된 문학 세계를 살펴봄으로써 『碧蘆集』이 지닌 연행문학사적 가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우리 문학사의 전개 과정에서 한시 작품에 저자 스스로 주석을 붙이는 ‘漢詩+自註’결합 방식이 출현한 것은 중국과의 문학 교류가 활발해진 고려 시대 중기 이후부터이다. 저자 스스로 한시에 自註를 붙이는 서술 방식은 조선 시대에도 명맥을 이어 왔으나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면 自註 외에도 저자 자신이 스스로 自評을 첨부하거나 혹은 타인의 評이 첨부된 한시 텍스트가 출현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18세기 이후 김성탄 평비본 독서 열풍과 비평 이론 학습으로 말미암은 조선 지식인들의 비평 활동 증대 경향은 조선 후기의 연행 문헌으로도 확대되어 評者의 評點批評이 첨부된 이른바 評批本 燕行錄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가운데 1832년 副使 尹致謙의 護軍으로 冬至兼謝恩使行에 다녀온 김진수가 저술한 『碧蘆集』은 본문인 漢詩에 저자가 스스로 自註를 붙이고, 여기에 조선 문인인 黃鍾顯의 詩評이 첨부된 독특한 연행시집으로, 19세기 評批本 燕行錄의 출현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碧蘆集』에 기술된 텍스트를 직접 분석하고 고찰하여 대상자료의 서술 방식과 특성, 더 나아가 문헌자료의 저술 배경과 문학사적 의의를 규명하고자 한다. 제Ⅲ장에서는 『碧蘆集』의 문헌 인용 양상과 의미를 ①조선 문헌 인용 양상과 의미, ②중국 문헌 인용 양상과 의미로 나누어 각각 살펴본다. 『碧蘆集』의 본문인 ‘漢詩’,‘自註’,‘詩評’을 살펴보면 저자가 조선 및 중국 문인의 문헌을 다량으로 인용한 사실이 확인된다. 본고에서는 『碧蘆集』에서 조선 문헌을 인용하는 방식이 부분 인용 또는 전체 인용 방식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각각의 인용 방식을 살펴보되, 특히 『碧蘆集』과의 관련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박제가의 「燕京雜絶」이 실제 본문에서 인용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碧蘆集』의 문헌 인용 방식과 의미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다. 『碧蘆集』의 본문에서 명말청초 문인 전겸익의 『有學集』이 인용된 양상과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하고자 한다. 제Ⅳ장에서는 『碧蘆集』의 주요한 특성인 ‘漢詩+自註+詩評’결합 형식의 연원과 특성을 검토하였다. 이 장에서는 먼저 우리 문학사에서 自註가 활용된 사례들을 검토하여 ‘漢詩+自註’ 결합 형식의 연원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碧蘆集』의 自註 서술 방식에서의 전통 계승과 변용 양상에 대해서 고찰하기로 한다. 아울러 황종현의 詩評에서 문학비평의 전범으로 꼽히는 袁枚의 『隨園詩話』와 司空圖의 『二十四詩品』 등이 인용된 사실에 주목하여 우리 한시 비평사의 전개 과정 중 황종현의 시평이 출현한 배경과 의의를 검토한다. 제Ⅴ장에서는 『碧蘆集』에 나타난 작가 의식을 분석하여 근대 이행기의 작가로서 김진수의 의식과 그것이 구현된 문학 세계를 검토하였다. 이 장에서는 김진수가 북경의 민중들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 紀俗詩와 幻戱詩를 통해 그의 현실주의적 창작 경향이 반영된 문학 세계를 살펴보고, 『碧蘆集』에 수록된 論詩詩를 통해 김진수가 朝·中 문인 간의 神交를 중요시하였던 면모를 고찰한다.특히 19세기 북경의 幻術(마술) 공연을 묘사한 「幻戲宴」 28수는 조선 후기에 발달한 演戲詩 가운데서도 찾아보기 드문 환술을 소재로 한 장편시라는 점에서 독특하며, 환술 공연의 묘사뿐만 아니라 공연을 펼치는 배우와 공연장의 환경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는 점도 주목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碧蘆集』에서 조선 문인들의 작품 세계를 논평한 論詩詩는 기존의 연행시집에서는 보기 드문 비평시라는 점에서 연행 문헌과 한시 비평의 본격적인 결합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지식사의 고증학적 경향 속에서 『碧蘆集』은 조선과 중국의 다양한 문헌을 수용하는 한편, 기존의 연행 문헌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장편의 紀俗詩, 幻戱詩, 論詩詩 등 새로운 한시 형식을 삽입하여 연행시 텍스트의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김진수의 『碧蘆集』은 우리 문학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18세기 이후 우리 문학사에 나타난 변화상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문헌이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진 김진수의 생애와 그의 문학 세계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이것을 계기로 향후 김진수의 생애와 그의 문학 활동에 대한 더욱 심도 있는 연구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