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late 1930s, the Jewish refugee crisis was increasing international tensions. Among the Jewish refugees were doctors who possessed professional medical skills. As the entry and settlement in the UK seemed increasingly difficult, the Jewish doctors began to turn their attention to the British colonial empire that seemed to provide not only the enough room for asylum but also possibilities for development to which they could contribute through their knowledge and skills. In other words, the colonial territories were seen to be the space where the two needs of rescuing the refugee and advancing local welfare could be incorporated. To meet those needs, the Colonial Office promoted a plan to employ Jewish refugee doctors in colonies during 1938-1939. However, the plan was not realized to fully meet the humanitarian needs of refugee doctors. Interests of Britain and the colonies were almost always prioritized than the needs of refugees. Moreover, as the plan was carried out within the existing legal and administrative frame, the drive for rescue became increasingly reduced. Consequently, employing refugee doctors in the colonies contributed to the domestic refugee politics which continuously tried to exclude Jewish refugees from the British society and maintain the number at the minimum.
1930년대 후반, 독일 발 유대인 난민 위기가 국제 사회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절박하게 탈출을 원했던 유대인들 중에는 의사들도 있었다. 영국으로의 이주가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이들은 의사로서의 능력을 앞세워 영 제국 식민지에 정착하고자 했다. 물론 이 의사들뿐만 아니라 정부, 정치인, 구호 단체, 국제기구 등도 난민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국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제국 식민지는 이미 과밀 인구에 시달리는 영국보다 광대할 뿐만 아니라 난민 의사들의 전문 능력이 현지 사회의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곳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즉 식민지는 난민 구호와 식민지 개발이라는 두 요구가 결합될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식민부는 1938-1939년에 유대인 의사들을 식민지에 채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결론적으로 이 계획은 많은 제약 속에서 아주 소수만을 대상으로 추진되었다. 식민부의 계획에서 영국 및 식민지의 이해는 줄곧 난민 구호보다 우선했으며, 기존의 법적 틀은 결국 난민 구호를 위한 동력을 상당 부분 축소시켜버렸다. 무엇보다 식민부의 채용 계획은 이미 영국 내에 들어온 의사들만을 대상으로 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국내로부터 난민을 배제하고자 했던 국내 정치 및 의료계의 요구에 부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