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도는 운명을 말한다. 꼭 그런 거창한 이유로 떠나기보다는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사람과 일에 질려 작은 가방을 둘러멘 채 무작정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역마」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다. 어떤 남자가 할 일을 제쳐두고 찌질하게 도망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도망쳐 왔다. 막막한 진로나 갑작스레 이별을 고한 인연이라지, 그런 것들에게서 떠나기 위해 작은 메신저백을 메고 여행을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깜냥은 안되기에 선택한 작은 일탈이 바로 이 책이다. 혼자 떠나기엔 너무나도 무섭고 외롭기에 같이 떠나길 선택한 것이다.
여행을 같이 떠나는 듯한 느낌이다. 계획도 동료도 없이 작은 노트북과 대한민국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썩 나쁘지만은 않다. 생각 외의 인연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도심에선 약 없이 청할 수 없던 잠이 싸구려 이불과 불편한 방에서 솔솔 오거나, 아픈 기억의 인연이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또 좋아했던 운동도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즐길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도망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처음 만난 사람과 욕지거릴 하며 감정을 소모하거나 생각보다 큰 운임을 지불하며 아쉬움을 느낀 순간들도 있지만 그것들을 차지하고도 괜찮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방황하지 않고선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사실도 있다.\”
삶이 비록 빌어먹을 똥통 같을지라도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라는 것이다. 방향없이 떠난 여행에서 쓴 작은 일기들이 엮여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는 일이다. 목적지까지 차가 막혀 너무 돌아가서 택시비를 비싸게 냈다고 생각하면, 떠나버리는 것이 마냥 위험하고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작은 여행은 책을 덮음과 동시에 끝났다. 직접 떠나지 못함은 아쉽지만 그래도 비슷한 효과는 받은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왜 도망치고 싶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행복했다. 이 글을 읽는다면「역마」를 보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짊어진 책임에서 떠나 보았으면 한다.
아쉽게도 그것이 하나의 도망이던, 여행이었던 간에 끝이 난다. 당연하게도 종착지는 원점인 우리 일상에서 끝이 날 것이다. 종착지의 내 모습이 추레하고 지저분한 모습이더라도 뭐 어떤가, 많이 돌아서 오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