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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모든 주체들을 위한 ‘올리버 색스’의 임상 보고서
저자/역자
올리버 색스
출판사명
알마
출판년도
2016-08-17
독서시작일
2021년 09월 01일
독서종료일
2021년 10월 02일

서평내용

– 당신은 ‘당신’으로서 살고 있습니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24명의 신경질환 환자의 이야기 24편이 올리버 색스의 눈을 통해 담겨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올리버 색스’가 되어 24인의 각각의 이야기를 들으며 병과 투쟁하는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병’에 수동적으로 잠식되는 나약하고 의지박약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올리버 색스가 보여주는 그의 환자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들의 삶을 지배하려 하는 ‘병’을 똑바로 인식하고 이겨내려 하는 하나의 ‘주체’였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책에서 단순히 ‘환자’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주체로서 살아나가는 24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정말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많은 현대인들이 필요에 의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아내며 ‘나’를 잃어가는 것 같다. 우린 스스로가 과연 자기 인생의 주체로 살고 있는지 의심해보아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앞으로 나는 이 책의 24편의 이야기 중에서 ‘크리스트너’와 ‘톰슨’의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려 한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몸을 잃은 ‘나’, 몸을 잃은 사람들

1부 상실,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의 주인공인 크리스티너는 스물일곱의 마음이 건강하고 또 자신감 넘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몸의 거의 모든 ‘고유 감각’이란 것이 손상되면서 스스로 몸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진 것인데,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몸이 없어진 것 같은”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병을 똑바로 마주 보고 인정하며 자신의 몸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크리스티너는 결국 자신의 몸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주체적인’ 몸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운동할 때, 공부할 때, 수업을 들을 때 ‘아, 내 몸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인지 그녀의 ‘내 몸이 없어진 것 같은’ 경험이 조금은 공감이 됐다. ‘내 몸 같지가 않은’상황에서 나는 내가 몸에 지배받고 있음을 느꼈다. 원래라면 ‘나’라는 존재의 ‘의지’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몸에게 말이다. 만약 이와 같은 경험이 있다면 우리의 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몸은 마치 크리스티너의 몸처럼 ‘우리’에게서 통제력을 상실한 채 자유분방하게 버려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이러한 ‘상황’이 크리스티너와 완전히 같다고 보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정말 단순히 ‘의지’의 문제겠지만, 크리스티너의 문제는 ‘고유 감각’을 잃은 어떠한 ‘병’과 그 ‘증상’에 가깝다는 점이 그렇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은 크리스티너가 했던 노력에 비한다면 한결 수월하리라 생각한다. 올리버 색스가 크리스티너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몸의 지배 아래 있을 것이 아니라 몸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 기억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나’

몸의 ‘주인’이 되어 진정으로 몸의 주인이 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2부 과잉, ‘정체성의 문제’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톰슨’이다. 그는 기억상실로 인해 자신에 대한 기억을 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계속해서 말을 지어내어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면서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된다. 자신을 잊어버린 그 공허함을 채우고자 계속 스스로에 대해 “지껄였던” 것이다.

우리도 때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의 부족한 점을 감추기 위해 또는 또 다른 이유들로 ‘나’의 모습을 거짓으로 포장하면서 그와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다. 수많은 가면을 쓰고 또 바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입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점과는 다르다. 다양성을 드러내는 일은 ‘나’의 진짜인 여러 모습이므로 ‘나’를 잃기보다는 나를 찾아가는 일에, 진실한 나를 마주하는 일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로 보지 못하고 톰슨처럼 스스로를 꾸미는 일은 자기 정체성에 큰 혼란을 주며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과는 멀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톰슨은 ‘기억’을 잃었기에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지껄임”을 멈추고 자기 정체성을 수립해 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기억’을 가지고 있음으로 더 쉽게 자기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나’에 대한 ‘기억’을 부정한다. 그래서 올리버 색스는 톰슨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기억’들 조차 ‘나’라는 점과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기도 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라고 우리에게 말하려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기억’이란 것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정말 중요하다. 그 기억 속의 ‘나’의 모습이 좋든 싫든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색스가 전하는 톰슨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 않나요?’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동시에 ‘정체성을 가지고 나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래선 안 된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또한 올리버 색스가 되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를 위해 이런 말을 해 보고 싶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진정한 ‘나’를 마주해야 한다. 즉, 나조차 속였던 ‘나’의 모습 같은 건 버리고, 진짜 ‘나’의 모습을 ‘기억’하며 진정한 나를 찾아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 누가 환자일까?

우리는 이 책의 크리스트너와 톰슨으로부터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크리스티너‘들’과 톰슨‘들’을 평소에 어떻게 취급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그들에 대한 배려 없이 단순히 ‘정신병자’라고 인식하지는 않았는지, 그들의 병을 그들 ‘의지’의 문제라며 외면하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이에 대해 자문하며 나는 그래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으며 정작 주체성을 잃은 채 살아갔던 것은, 이 세상에 있어서 진정한 ‘병자’였던 것은 나, 어쩌면 우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올리버 색스는 우리에게 수많은 크리스트너들과 톰슨들에 대한, 즉 신경질환 환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한다. 올리버 색스의 말처럼 우리에겐 “그들을 병자라고 부를 어떠한 권리도 없다.”라는 것과 오히려 병자인 것은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 정체성마저 주체적으로 형성하지 못한 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러한 것이다. 누구보다 ‘나’의 인생에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의지력과 생명력이 넘치는 그들을 향해 ‘누가 감히 병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더는 그들을 병자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올리버 색스가 그의 환자를 대한 태도처럼 우리도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오히려 그들의 ‘나’의 인생을 ‘나’로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주체성’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 24명의 신경질환 환자에게 배우는 ‘나’로서의 삶.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크리스티너를 통해 ‘나’의 몸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톰슨을 통해 내면의 ‘나’를 찾아내는 방법은 ‘나’를 기억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22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병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 또한 만들어진다. 그들을 병자로 여기는 것은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다. 의사였음에도 그의 환자들을 단순히 ‘환자’가 아니라 ‘고객’으로 대했던, 그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던 올리버 색스의 태도는 나 또한 올리버 색스가 되어 환자들과 만나며 그들과 평등한 시각과 입장에서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스스로 몸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이 땅의 모든 ‘주체’들에게 추천하려 한다. 그들은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 소녀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대학교 신입생일 수도 있을 것이고, 갱년기를 마주한 중장년층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24인의 주체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들로부터 다양한 배울 점을 가지고 있다. 올리버 색스가 되어 자기 스스로를 진단해 보기를, 아니 관찰하기를 바란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을 스스로 고민하는 경험을 하기를, 동시에 ‘나’로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어쩌면 처음일 그 발걸음을 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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