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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밤을 탐하다
저자/역자
박우찬
출판사명
소울 2009
출판년도
2009
독서시작일
2011년 01월 16일
독서종료일
2011년 01월 16일
서평작성자
**

서평내용

색다른 밤을
알게 해 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신순주 선생님의 권유로 그를 만나게 되었고, 나의 여명(twilight)도 반짝 반짝 빛나게 되었다.
고흐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된 거은 작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저작권연수로 서울에서 친구집에서 기거를 하게 됐고, 친구와의 약속장소가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였다. 그곳엔 책 뿐만아니라 다양한 문구류 및 패션용품이 즐비해 있기에 책 뿐만아니라 아기지가한 아이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의례껏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흐의 작품들. 유독 눈에 띄었던 ‘별이 빛나는 밤’은 밤하늘 별들의
역동성 만큼 화가의 열정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속에 고흐의 외롭고 궁핍한 생활이 깃들어 있을 줄은 몰랐다. 고흐는 외로운 방랑자였고,
미술계의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그는 진심어린 애정과 끝없는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모두가 고루한 성직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권했지만 그는 탄광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과 옷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이를 본 전도사협회는 그가 성직자로서의
품위를 위배했다며 6개월만에 관직을 파하고 만다. 지금이나 그때나 권위와 명성 앞에서 가난한 자를 천시했던것 똑같은 것 같다. 전도사직을
해임하지 않았다면, 태양의 화가 고흐를 만나지 못했을테니 그 후손들에게는 오히려 더 반가운 일일터…화가로서의 삶도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밀레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그렸지만, 곧 인상파의 빛에 의한 그림에 비해 자신의 그림이
고리타분함을 알고 파리로 가서 그만의 그림을 시작한다. 고흐는 밀레 뿐만 아니라 일본의 단순하면서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었고, 그의 태양에
대한 집착(?)도 바로 일본의 지리학적 위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에서의 그의 작품은 주로 남부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미술사적 흐름을 보았을 때 모네, 고갱, 폴세잔 등의 화가들이 그림을 통해 억대의 수입을 거두었다. 하지만 고흐의
그림은 값어치가 없었는데 그의 그림이 그 시대에 얼마나 독창적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뿐만아니라,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친구가 그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고 악평을 했다고 한다. 작품이 나아지기는 커녕 퇴보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 얼마나 큰 값어치가 있는가, 그때의 그 친구가 살아있다면 분명 자신의 행동을 뉘우칠 것이라 생각된다. 어쨌건 고흐의
그림은 19세기 미술계와는 조금은 다른 길을 걸었던 것 같다. 그의 그림이 후세에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동생 테오와 테오의 아내
요한나 덕분이라고 본다. 테오의 물질적인 헌신과 재수의 고흐 사후의 홍보활동이 없었다면 ‘노란 집’, ‘별이 빛나는 밤’, ‘감자먹는
사람들’과 같은 명작을 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한가지 더 흥미로웠던 사실은 고갱과의 미술공동작업을 위해 노력했던 고흐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를 위해 멋지게 방을 그리고 침대며 의자, ‘해바라기’작품까지 완비해 놓고 기다렸지만, 그와의 동거는 3개월만에 끝나고
말았다. 서로 달리 커 온 환경, 종교관, 가치관, 성격, 미술관 등 어느 하나 맞는게 없었고…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되는
정신분열증까지 보이게 되는 고흐. 그의 이런 발작에 어느 누가 떠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가 왠지 측은해 지는 이유는 그의
열정을 너무나 몰라주는 사람들…사람들 때문이다. 그가 이처럼 유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형의 죽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빈센트라는 이름도 바로 그 형의 이름이었는데 태어나자 마자 죽자 바로 자신이 그 이름 갖게 됐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평생을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이름으로 얼마나 괴로워 했을까…. 그 괴로움과 고독이 텅빈새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아 측은해졌다.
그러다가 그의 말년에 테오의 품에 죽으면서 했던 말, “테오야 이렇게 죽고 싶었다.”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가족이
있었지만 평생 가족애를 몰랐던 고흐.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정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 없었던 한 남자. 그에게 있어 가족은 테오였고, 그의
열정의 방향은 테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그의 그림에서 고흐의 열정 뿐만 아니라 테오의 형제애를 함께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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