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쓰기

>>
서평쓰기
>
어둠 속에서 인간을 보다
저자/역자
고예나
출판사명
산지니
출판년도
2023-11-24
독서시작일
2026년 04월 01일
독서종료일
2026년 04월 28일
서평작성자
오*은

서평내용

  역사소설은 흔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좋은 역사소설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고예나 작가의 <경성 브라운>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히 독립운동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복잡한 내면과 현실적 선택, 그리고 시대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모습을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일제강점기를 비교적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는 정의롭고 숭고한 존재이며, 친일 인물은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식의 구분이었다. 물론 지금도 일본의 침략이 부당했다는 사실과 독립운동의 가치 자체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성 브라운>은 그러한 단순한 구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허물어져 가는 북촌을 바라보며 두 인물이 나누는 대화였다.

   “북촌이 발달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북촌과 남촌의 하늘이 같은 조도로 밝아지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럼 어둠은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처음 이 대화를 읽었을 때는 단순히 분위기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니, 이 장면은 소설 전체의 핵심을 담고 있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말하는 ‘어둠’은 단순히 일제강점기의 비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선 사회 내부에 존재하던 차별과 억압, 인간이 가진 욕망과 두려움, 시대 속에서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역사소설은 독자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해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성 브라운>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작품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친일을 선택한 사람들은 정말 모두 악인이었는가?”, “나라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한 선택은 무조건 비난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고 쉽게 타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그리고 작품은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작품 속 고종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고종을 무능한 군주로 기억하거나, 반대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황제로 기억한다. 그러나 <경성 브라운> 속 고종은 어느 한쪽으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이면서도, 동시에 나라를 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군주로 그려진다. 작품 속 인물들 역시 고종을 두고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린다. 누군가는 고종이 나라보다 황실의 안위를 우선했다고 비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약소국의 군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이 흥미로워 작품을 읽은 뒤 실제 역사 자료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실제로 고종은 을사늑약 과정에서 황실의 존엄을 보장하는 조항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반면 헤이그 특사 파견과 같이 국제사회에 일본의 침략을 알리기 위한 외교적 시도를 했다는 기록 역시 존재한다. 즉, 역사 속 고종 역시 단순히 무능한 군주 혹은 영웅적인 황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바로 이런 역사적 논쟁과 인간적인 고민들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또한 작품 속 훈길이라는 인물 역시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는 조선 사회의 신분제 아래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어머니는 주인의 욕망 속에서 희생되었고, 자신 역시 노비라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에 애정을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일본 지배 아래에서 신분과 상관없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결국 그는 독립운동 계획을 일본 측에 넘기는 선택까지 하게 된다.
  보통의 역사소설이었다면 훈길은 단순한 배신자로 묘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경성 브라운>은 그의 선택을 쉽게 악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품은 독자가 그의 삶과 감정을 따라가며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인간은 언제나 정의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삶과 생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 속에서 선택하기도 한다. 작품은 그런 인간의 나약함과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작품 속 이완용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이완용은 분명 역사적으로 강하게 비판받는 대표적인 친일 인물이다. 하지만 작품은 그를 단순한 괴물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선택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인물로도 그려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친일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품은 인간의 선택이 단순한 선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오히려 스스로가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분명 역사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인물들인데도, 작품 속에서 그들의 감정과 고통이 묘사되면 어느 순간 그들을 연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낯설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성 브라운>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를 단순한 지식으로 소비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신 인간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함부로 단정하거나 쉽게 미워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작품은 조선 사회 내부의 문제 역시 함께 보여준다. 조선은 일본에게 침탈당한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신분제와 차별이 남아 있던 사회이기도 했다. 작품 속 훈길이 조선의 독립을 바라지 않았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조선은 지켜야 할 조국이기 이전에, 이미 자신을 억압하던 사회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역사에 대해 더욱 복합적인 시선을 가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애국을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경성 브라운>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라는 질문이다. 만약 사회가 특정 계층에게 끊임없이 차별과 억압만을 준다면, 그 사회를 무조건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친일과 독립운동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나는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역사 속 인물들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어떤 시대와 환경 속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경성 브라운』은 단순한 역사소설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경성 브라운>은 결코 가볍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때로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익숙했던 역사 인식을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다. 역사를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인간의 삶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자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역사 속 인간의 복잡한 모습과 시대의 모순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전체 메뉴 보기
AI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