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책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제주 4·3 이후에 그 기억에 대한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1부 “새”에서는 악몽을 꾸던 경하가 손가락이 다친 인선의 부탁을 받아 눈보라를 뚫고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인선의 기억, 인선 어머니의 경험으로 들어가게 된다. 2부 “밤”에서는 인선의 집에 도착해 죽은 새를 묻고, 손가락에 상처가 없는 인선과 대화하며 새가 다시 날아다님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인선은 경하에게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머니가 모은 학살에 대한 자료들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고통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3부 “불꽃”에서는 인선과 경하가 어둠 속에서 촛불을 들고 검은 나무 프로젝트의 나무를 심을 장소로 이동한다. 그 가운데 인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인선이 찾은 자료와 함께 그들은 고통의 끝까지 내려가게 된다.
필자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왠지 따뜻한 책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누군가를 향한 의지가 담겨 있는 듯했고, 평소 존경하던 한 사람이 이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린 것을 보고 더 읽어 보고 싶어졌다.
실제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책 제목의 의미에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들은 정말로 헤어지지 않는데 이별을 고하지도 않는다. 정심은 당시 기억으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게 되는 동시에, 그녀는 망각에 맞서고 애도를 종결하지 않기 위해 고통을 품고 산다. 그 고통은 인선에게로, 또 경하에게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들 또한 고통을 껴안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 고통은 사랑이다. 작가는 이 책이 결국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라고, 또한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은 우리의 고통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랑을 이 책의 인물들과 작가에게서 알 수 있다. 먼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학살 이후 요 밑에 실톱을 깔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정도로 일평생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오빠의 행적을 찾는 일에 수십 년을 바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은 간절한 만큼, 고통이었다. 이는 인선이 그녀의 어머니 정심의 손길에서 느낄 수 있었다.
”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작가 자신도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압도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고통의 이유는 사랑이었다. 그녀는 자기 삶의 모든 질문은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인선과 경하는 죽은 이들의 고통이 자신들에게 스며들게 됨을 경험한다. 인선은 학창 시절 때부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죽고 싶다고 느꼈다.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경하의 경우, 이전에 한 책을 쓴 이후 악몽을 꾸면서 죽고 싶어 유서를 써왔다. 그녀는 그 고통과 작별하고 싶었으나 작별할 수 없었다. 또, 인선의 집에서 인선에게 학살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곳에 죽으러 왔다고 이야기한다.
”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베어지고 구멍 뚫리려고, 목을 졸리고 불에 타려고 왔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하기에 고통을 계속 껴안는 선택을 한다. 인선은 그녀의 어머니를 이어 남은 자료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겪은 악몽과 환영 등의 고통을 똑같이 겪는다. 또한 여러 역사적 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인선은 만들어왔다. 경하 역시 눈보라를 뚫고 새를 구하러 가면서 타인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포기하려 했던 검은 나무 프로젝트도 결국 다시 이어 간다.
이 사랑은 죽은 이들과 살아 있는 이들을 이어 준다. 환상적인 전개와 눈이라는 상징은 이를 표현한다. 먼저, 환상적인 전개의 예로는 죽은 새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장면과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집에서 경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이는 죽은 이들을 향한 인물들의 간절한 사랑을 드러낸다. 또한 인선은 자신의 아버지가 감옥에 갔던 일과 자신이 활주로 아래 구덩이에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실제로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품으며 그들의 삶을 함께 살아가게 된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여러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눈도 중요한 매개체이다. 눈은 학살당한 이들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삶과 죽음, 소리와 침묵, 기억과 현실, 모든 그 차이를 채우는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죽은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인물들의 의지를 상징한다. 죽은 이들은 눈처럼 차가운 고통 속에 있었고, 눈은 차가운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눈은 그들의 고통을 끝까지 기억하고 품으려는 마음을 상징한다.
그들이 고통으로 이어진 실에는 전류가 흘러 생명으로 향하게 된다. 인선과 경하, 작가는 껴안기 어려운 것을 껴안았고, 고통이 따랐지만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게 되었다. 경하가 어둠 속에서 밝히는 촛불은 심장처럼 고동치고 꽃봉오리처럼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생명의 상징이다.
인선의 손가락 이야기 역시 이를 보여 준다. 손가락을 살리기 위해서는 계속 바늘로 찔러 상처를 줘야 했다. 그렇게 해야 신경에 전류가 흐르게 함으로 손가락이 썩지 않았다. 이는 그녀가 껴안기 어려운 것을 껴안았을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보인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학살 관련 자료를 찾으며 고통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절멸을 위해 죽임당한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며 기쁨을 경험한다. 그녀는 고통을 껴안는 과정에서 생명이 흘러 들어옴을 느낀 것이다.
경하의 경우, 새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인선의 집으로 간다. 이는 단순히 새를 구하는 행동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 했던 경하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으로 변화한 것이다.
작가 또한 이 작품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가장 강한 인물인 정심은 자신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고 했다. 이와 같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할 때, 생명의 길로 가게 된다. 역설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작가가 던졌던 질문이다. 이에 대해 작품은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산 자가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함께 아파할 때, 죽은 자들은 계속해서 산 자를 살린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살리지는 못해도 기억을 통해 그들의 죽음은 살아있게 한다. 책에서 죽은 새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그들이 다시 태어나는 것 같게 한 한다. 인선과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를 감당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한 이들의 이야기는 밖으로 꺼내어진다. 제주 4·3 당시 목격자였던 할머니는 원래 그 일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군에게 성폭력을 당한 베트남인 할머니는 오랜 시간 그 만남을 기다려온 사람과 같았다. 그 짧은 승낙의 말에는 그의 인생 전부가 들어있다고 했다.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면 사라질 뻔한 기록들이다.
필자는 이와 같이 죽은 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랑이 힘이 있다고 본다. 그들의 사랑은 산 자를 변화시키고 생명의 길로 이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심, 인선, 경하가 보여준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사랑은 죽은 자를 기억하게 하고 산 자를 변화시키지만, 죽음 자체를 극복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궁극적인 소망은 기억과 연결을 넘어 죽음 이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영원한 세계에 있다. 그들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제주 4·3은 우리가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야 할 일이다. 제주 4·3은 단순히 과거에 갇힌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삶이 파괴된 비극이었으며, 그 기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고통에 연결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이는 한 영혼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들과 연결되며 생명을 향한 마음으로 채워진다.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품는 일이다.
제주 4·3을 비롯해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핼로윈 참사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아픔이자 책임이다. 나아가 우리는 국경을 넘어 열방에서 여전히 가난과 질병, 전쟁으로 신음하는 인류의 고통으로까지 뻗어 나가야 한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이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동시에 상실을 겪었거나 삶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고통으로 연결되어야 할 대상은 내 곁에 있는 이웃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각자의 생존에 몰두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수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그들의 고통에 연결되어 생명을 구해야 한다. 인선처럼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이며, 경하처럼 자신의 세계를 넘어 걸어가야 한다. 정심처럼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어두운 세상 속 촛불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지극한 사랑을 알게 한다. 작품 속 인물들과 작가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껴안는다. 또한 기록들 속에서 피어나는 듯한 제주 4·3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함께 기억하고 아파하게 한다. 그리고 고통으로 연결된 그 사랑은 생명으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물론 인간의 사랑만으로 죽음의 문제 자체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은 개인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제주 4·3을 비롯한 수많은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손 내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