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타자의 시선과 목소리 앞에 우리의 열망은 갈기갈기 찢겨, 저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되고 만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혼자였다. 아버지의 법이라 불리는 엄격한 시선과 규율은 내 안에 각인되어, 마치 그림자처럼 언제나 쫓았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했지만, 상당히 엄했으며 때로는 가부장적이셨다. 집에서 쫓겨나거나, 부모님께서 다투실 때면 ’도대체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어디에도 나를 사랑하는 이는 없구나‘하는 일념으로 그저 울분과 외로움 속에서 슬퍼하곤 했다.
사랑받는 법을 몰랐기에, 사랑하는 법도 몰랐다. 어릴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을 하나 꼽으라면 부모님의 테두리 안에서 사랑과 평온함을 느끼는 친구들이었다. 본인의 이상과 감정을 투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멋진 어른이 있으면 했다. 사랑의 부재 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고독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고, 따돌림당하거나 홀로 있을 때가 많았다. 상대를 존중하고 내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기에, 내가 빠지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관계의 연속이었다. 살면서 가장 많이 후회한 건, 지금의 나라도 좋으니, 그 누구라도 괜찮으니, 멋진 어른이 내 곁에 있어 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환경과 태도는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지대했다. 외형부터 성격, 욱해서 화내는 모습까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에서까지 부모님을 닮아있었다. 사랑을 주는 것이 무섭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게 전해지지 않은 사랑은 끝내 단절되어 나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었다.
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모든 청춘에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내 안으로 향하는 여정을 선언하며 따스한 손길을 건넨다. 소년 싱클레어가 겪었던 어둠의 세계와 크로머에게 억압당하며 느꼈을 공포는, 사랑받는 법을 몰라 고립되었던 유년기의 고통과 다름없다. 싱클레어의 고독한 투쟁과 성장은,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외로이 방황할 모든 이들의 자화상과 같다.
“우리가 지금껏 간절히 쫓고 바라왔던 이상은 그 무엇도 아닌 우리 안에 있었다. 그건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다. 단지 ‘세계’라 불리는 관념과 틀 속에 웅크려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세상이 정해놓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 속에서, 목소리를 잃고, 가면을 쓴 채 끝없이 방황한다. 아버지의 법에 순종하려고 발악하는 동안, 우리의 삶은 의미를 잃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을 뜨지 않고서는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다음은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진정한 삶이란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내 안의 웅크린 거인을 깨우라“라고 결연히 선언한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모든 걸 쏟아부어도 후회하지 않을 거대한 열정. 그것이야말로 실패마저 성장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우리의 근원이다. 가짜를 죽이고, 남이 정답이라 규정지은 편협한 틀을 모두 벗어던져라.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발견하듯, 순수히 내면을 탐구하고, 그 목소리에 충실할 때, 우리는 우리로서 존재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 그 만물을 아우르는 천상의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결핍과 욕망을 벗어던질 때야말로, 순수히 세상을 관조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내면의 자아가 가진 힘이다. 부모의 세계가 내 안에 있음을 인지하고, 그 더러운 시선과 관념을 모두 때려죽일 때,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다.
결국, 고난과 역경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또한, 여러 세계에 둘러싸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없기에 방황의 시간은 필연적이다. 사회라고 하는, 부모라고 하는, 나라고 하는, 나를 규정짓는 그 모든 언어를 벗어던지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껏 도전하고 부딪쳐야만 한다. 내 삶의 목적은 그 무엇도 아닌, 자아의 실현에 있다.
우리는 세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분법적 사고를 과감히 버리고,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오직 강렬한 열망으로 시작된다.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와 포착되는 것이요, 운명은 누군가 정해준 것이 아닌, 개척하는 것이다. 『데미안』은 이 고독하고 치열한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라고 강조한다.
『데미안』은 막연한 위로가 아닌, 내면을 향한 통찰과 용기를 주는 거울과 같다. 우리가 간절히 찾아 헤맸던 것이 이미 우리 안에서 간절히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우리의 삶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건, 어쩌면 내면의 거인이 아직 잠들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짜를 죽이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당신의 삶을 구원할 주체는 오직 당신뿐이며, 그 고독한 투쟁 끝에 너는 비로소 너의 주인이 되어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