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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위에서 ‘진짜’를 묻는 일
도서명
저자/역자
성해나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5-03-28
독서시작일
2025년 12월 06일
독서종료일
2025년 12월 06일
서평작성자
김*레

서평내용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제목에서 암시되듯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 작품집의 흥미로운 점은, ‘진짜’라는 개념을 단 하나의 의미로 좁히지 않고, 관계·정체성·욕망·가족·시대적 구조 같은 다양한 층위에서 다르게 흔들어 보인다는 데 있다. 총 7편의 단편들은 서로 직접적인 연속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공통적으로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변주하며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표제작 「혼모노」는 소설집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물들은 ‘본물’이라는 단어가 지닌 진정성의 이미지를 좇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만들어낸 얼굴 뒤에 숨어 있다. 타인의 인정 속에서만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망, 스스로를 꾸미면서도 꾸밈을 부정하고 싶은 모순이 겹겹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진짜처럼 보이려는 욕망’이 오히려 ‘진짜’라는 개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소설집의 문을 연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죄책감과 욕망이 뒤섞인 인간의 회색 지대를 다룬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개인의 감정,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적 기준과 실제 행동 사이의 거리감이 작품 전반을 흔든다. 작가는 인물들의 흔들림을 통해 인간이 도덕적 기준 위에서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속이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스무드」는 겉으론 매끄럽게 살아가지만, 내면에서는 깊은 상처가 마찰음을 내고 있는 인물들을 다룬다. 사회가 만들어낸 ‘부드럽게 살아가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억눌러 온 감정들이 소설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성’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층위를 덮어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공간이 한 사람의 정체성과 기억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탐구한다.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붙잡아 두는 무게감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 공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떠나야만 하는 현실 사이에서 인물은 스스로의 ‘근원’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호적 감정」은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애매한 온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감정, 우정과 연민과 사랑 사이에서 생겨나는 모호한 유대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작가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감정이 때로는 ‘진짜’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잉태기」는 이름 그대로 탄생과 존재의 기원을 다루지만, 단순히 생명을 잉태하는 이야기를 넘어 어떤 감정이 자신 안에서 자라나는가를 질문한다. 인물은 기대와 두려움 사이에서 요동치며,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실제 욕망 사이의 간극을 마주한다. 이 작품은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수반하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단편 「메탈」은 단단한 외피를 가진 사람도 결국 내면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금속처럼 보이는 강함 뒤에 숨어 있는 불안, 감정이 마찰하며 낼 수밖에 없는 소리, 감정의 생채기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이 섬세하게 포착된다.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서, ‘강함 역시 하나의 가면’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처럼 『혼모노』의 일곱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과 정체성, 그리고 ‘진짜’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과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공통적으로 인물들은 스스로의 삶에서 진실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낸 가면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그 가면을 벗겨내는 대신, 가면과 얼굴 사이의 틈을 깊게 들여다보며 그 틈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진동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결국 『혼모노』는 진짜를 증명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진짜를 찾으려는 마음 자체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모든 단편을 읽고 나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짓는 일이 사실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신 우리는 그 경계 위에서 계속 흔들리며,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갈 뿐이다.

이 소설집은 바로 그 흔들림의 인간성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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