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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빚어낸 예술
저자/역자
파스칼 키냐르
출판사명
문학과지성사
출판년도
2013-08-27
독서시작일
2025년 12월 02일
독서종료일
2025년 12월 02일
서평작성자
박*혜

서평내용

침묵으로 빚어진 예술

-파스칼 키냐르『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

 

박지혜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1948년 노르망디 지방 출생의 프랑스 작가다. 1969년 에세이『말 더듬는 존재』(L’être du balbutiement)로 데뷔 후『로마의 테라스』(Terrasse à Rome)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 현재까지 여러 소설을 집필하면서 장 지오노 대상, 포멘토 상 등을 수상하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프랑스의 대표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작가 외에도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오페라 작곡가, 화가라는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다양한 이력은 그의 글쓰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소설에 시, 에세이, 희곡 등 여러 장르를 혼합해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Dans ce jardin qu’on aimait)에서는 희곡 형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대표적인 시리즈인『마지막 왕국』시리즈는 에세이와 소설의 장르를 혼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그의 작품은 ‘산문인 동시에 시(詩)이며,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장르에 속한다.’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파스칼 키냐르는 작가이면서도 그의 문학에 있어 ‘침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인터뷰에서 그는 침묵을 ‘음악과 언어에 드리워진 그림자’라고 표현하면서, 언어와 음악이 존재하기 이전에 침묵이 선행해야만 진정한 언어와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키냐르는 ‘침묵’을 위해 자발적 단절을 선택했다. 그는 작품 활동을 위해 1994년 모든 공직을 그만둔 후 초인종조차 없는 집에서 은둔하며 현재까지도 작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2003년 인터뷰 당시 전화조차 없어 편지로 오랜 시간 일정을 조율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태도는 그의 소설『세상의 모든 아침』주인공 ‘생트 콜롱브’와 매우 흡사하다.『세상의 모든 아침』은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가 아내를 잃은 후 시골에 은거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시골에 은둔하고 있는 콜롱브를 ‘마렝 마레’라는 사내가 찾아가 제자가 되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로 갈등하고 결국 마레는 궁정 음악가의 삶을 살지만 콜롱브는 죽을 때까지 그의 오두막을 떠나지 않는다. 콜롱브에게 있어 세상의 명성이나 사회적 성공은 음악의 본질을 흐리는 요소에 불과하다. 키냐르가 ‘침묵이 있어야 예술이 만들어진다’라고 역설하듯 그의 작품 속 주인공도 끝까지 허름한 오두막 속 예술 활동을 통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고독한 예술을 탐구한다. 결국 형태가 다를 뿐 본질적으로 예술을 위한 자발적 유배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진정한 예술을 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이정화는 “예술을 중심으로 인간의 창의적이고 지적인 정신 과정의 결과물이자 인간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공유하는 삶의 방식이 문화”라고 정의한다. 예술은 인간 문화와 떨어질 수 없으며 인간이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예술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에게 이러한 정신이 없으면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관점으로 볼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향유할 수 있도록 음악적 성공을 거둔 마레가 진정한 예술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혼자만 듣고 심취하는 음악을 하는 콜롱브가 진정한 예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독을 택했던 콜롱브도 음악을 통해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해왔다. 자신의 아이들에게조차 항상 무표정에 가끔은 엄하게 화까지 내던 그도 반항하는 둘째 아이에게 비올라 다 감바를 선물하면서 화해한 후로 음악을 가르치며 직접적인 대화보다 합주를 통한 소통을 이어나간다. 그의 제자인 마레 또한 소설 마지막까지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음악으로 화해하고 소통한다. 콜롱브에게 있어 음악은 세속적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더 깊은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소통의 수단이다. 그는 관습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는 거부하지만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을 통해 그 어떤 말보다도 진실한 그의 내면을 전달한다. 그의 침묵은 소통의 거부가 아니라 퇴색되고 가벼운 언어를 버린 진실한 소통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콜롱브의 이러한 소통 방식은 소통의 본질이 반드시 입 밖으로 내뱉은 언어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콜롱브는 오두막에서의 연주를 통해 죽은 아내의 영혼과 몇 번이나 조우하게 되는데 그들이 나누는 교감은 언어를 통한 교감이 아니라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과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통한 교감이다.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언어로 규명되거나 정의되지 않고 예술적 행위를 통해 비로소 완전한 소통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키냐르의 소설에서 죽은자와의 만남은 꽤 흔하게 사용되어 왔는데, 그에게 유령은 언어 이전의 언어 즉, 언어가 생기기 이전의 근원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그런 유령과의 만남은 단순히 생과 사를 극복한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세속적 언어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세계를 향한 갈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콜롱브에게 죽은 아내는 단순히 그리운 존재가 아니라 세속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순수한 침묵의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콜롱브는 음악을 통해 그러한 세계와 소통하며 진정한 예술을 끊임없이 탐닉하게 된다.

 키냐르는『세상의 모든 아침』을 통해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침묵을 통한 예술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독자는 콜롱브의 고독한 삶을 천천히 따라가며 콜롱브, 더 나아가 키냐르가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예술의 형태를 배운다. 여러 장르를 섭렵한 키냐르답게 『세상의 모든 아침』은 소설의 탈을 쓴 철학책에 가깝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돈과 물질로 얼룩진 현대 예술과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 무엇이 진정한 예술인가,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 고민이다. 자신이 어떤 예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예술을 해야만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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