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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가 말하게 하는 진짜의 의미
도서명
저자/역자
성해나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5-03-28
독서시작일
2025년 12월 06일
독서종료일
2025년 12월 06일
서평작성자
오*혁

서평내용

무엇이 진짜이며 무엇이 가짜인가

‘혼모노’가 말하게 하는 진짜의 의미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를 펼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제목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혼모노’는 일본어 ‘本物(ほんもの)’, 즉 ‘진짜’를 음차한 단어로, 한시대를 지나며 순수한 의미에서 벗어나 조롱의 뉘앙스까지 얻게 된 표현이다. 원래는 긍정적이던 말이 대중의 입을 거치며 뒤틀리고 소비되는 과정이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의 혼란과 닮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이소설집은 ‘진짜란 무엇인가’, 그리고 ‘가짜는 어디에서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을 작품 전체의 저변에 깔고, 감정,사실,정체성,신념이 얽힌 경계의 지층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표제작 『혼모노』는 그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다. 30년 동안 무당으로 살아온 문수는, 자신이 섬기던 신이 자신에게서 떠나갔음을 깨닫는 순간 생계와 신념의 기반이 동시에 흔들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이사 온 젊은 무당 신애기는 장수할멈이 이제 자신에게 왔다고 말하며 문수를 향ㅇ해 노골적으로 조롱을 퍼붓는다. 문수는 스스로 진짜라고 믿어온 세계가 갑작스레 무너지는 충격 속에서도 가짜라도 좋으니 계속 살아남겠다는 의지와, 그래도 진짜가 되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그가 모형 작두는 아무렇지 않게 들여오면서도 ‘오늘의 운세’ 같은 가벼운 점을 맡지 않으려 하는 장면은, 인간이 자기 내부에서조차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을 얼마나 모순적으로 다루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수와 신애기 사이의 신경전은 개인적 갈등을 넘어, 전통적 방식과 새로운 감각 사이의 세대적 마찰까지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블랙코미디가 감춰둔 균열 「스무드」는 세계적인 미술가 제프의 에이전트 듀이가 한국을 방문하며 겪는 하루치 사건들은, 그의 무지와 오만, 그리고 우연히 스며든 감정적 균열을 매끄럽게 포장한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헐거운 세계를 드러낸다. 한국을 ‘선입견의 나라’로만 인식하던 듀이가 적대의 상징처럼 보이던 시위대 사이에서 뜻밖의 환대와 온기를 경험하는 순간, 독자는 마치 새로 깎아낸 듯 반들거리는 구(球)의 표면 속에 숨겨진 미세한 금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금이 벌어지는 순간, 우리가 ‘선의(善意)’라고 믿어온 감정이 얼마나 맥락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지를 목격한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팬덤이 만든 ‘진짜’의 기준을 들여다보다

표면적으로는 유명 감독을 둘러싼 팬덤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믿음’이라는 감정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찐 팬’의 자격을 스스로 부여하려는 인물들은 감독의 과오를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순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작 감독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순간, 화자는 자신이 붙들고 있던 감정의 근본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고야 만다. 치앙마이에서 호랑이를 쓰다듬는 장면은 그 깨달음의 은유적 결말이며, 손바닥에 닿는 온기 속에서 진짜와 가짜 감정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도 제각각의 독창적인 인상을 남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바탕으로 그토록 잔악무도한 건물을 설계한 이는 누구인가를 일종의 추적 다큐멘터리처럼 다뤄낸 팩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역사의 어두운 공간을 따라가며 우리가 놓쳤던 책임과 질문을 다시 꺼내 보이게 한다.원정출산을 앞둔 며느리와 시부가 서로의 욕망을 드러내며 충돌하는 이야기다. 탄생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은 가족의 이해관계와 감정의 긴장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잉태기 「잉태기」, 지역 재생 스타트업 직원들이 귀촌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서로의 본심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겉보기엔 ‘좋음’과 협력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숨어 있는 진짜 감정과 이해관계를 차분히 파헤치는 내용인 「우호적 감정」, 고등학교 시절 메탈 밴드를 함께했던 세 친구가 어른이 된 뒤 각자의 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메탈」 까지

 

소설집 『혼모노』는 결코 선명한 결론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가 기대하는 명확한 ‘진짜’를 내놓는 대신,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예측 불가한지 보여준다. 그는 독자를 매끈하게 마감된 구(球)의 형태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갈라지고 패인 모서리, 쉽게 부서질 듯한 조각들을 더 정직한 진실이라 제시한다.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남는 것은 어떤 정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다.

성해나의 문장은 이 질문들 앞에서 독자가 멈추지 않도록 자극한다.

‘진짜’를 탐구하는 데서 힘을 빼지 않는 작가의 집요한 걸음은, 미래의 한국문학이 나아갈 길을 새롭게 열고 있다. 그가 구축한 이 복합적이고 불편한 경계 위에서 독자는 결국 스스로의 감정과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혼모노』는 그래서 단순한 소설집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품고 있는 불안과 진실의 형상을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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