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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서평
저자/역자
빅터 프랭클
출판사명
청아출판사
출판년도
2020-05-30
독서시작일
2025년 11월 05일
독서종료일
2025년 12월 05일
서평작성자
이*현

서평내용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다룬 책이다. 처음 과제로 이 책을 읽으라고 했을 때는 그냥 “전쟁 때 사람들 고생한 이야기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까, 단순히 힘들었다는 기억을 적어 놓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끝까지 파고드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쉽게 잊히지 않았다.

책의 앞부분은 프랑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서 겪는 일들로 시작한다.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줄 세워서 오른쪽, 왼쪽으로 나누는데, 그게 곧 생존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름은 사라지고 번호만 남고, 옷과 머리카락, 소지품까지 다 빼앗긴다.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있었던 인생, 가족, 과거, 꿈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노동력” 하나로만 취급되는 느낌이 너무 비인간적이라 읽으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수용소 안의 생활 묘사도 정말 답답하다. 너무 적은 식량, 말도 안 되는 저녁 점호, 이유도 없는 구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감정이 무뎌져 간다. 프랑클은 자기 자신부터가 죽음이나 폭력에 거의 반응하지 않게 되는 모습을 관찰한다. 사람이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면, 슬퍼할 힘조차 없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이 그냥 “끔찍한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프랑클이 정신과 의사로서 수용소 안의 사람들을 계속 분석하고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끝까지 버티는지, 누가 먼저 무너지는지를 보면서 그 차이를 설명하려 한다. 단순히 체력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지, 앞으로를 향한 이유가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프랑클이 강조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삶의 의미”다. 수용소라는 환경에서는 내일을 보장해 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꼭 해야 할 일”을 붙잡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다시 만나야 할 가족을 떠올리고, 또 어떤 사람은 아직 끝내지 못한 연구나 일, 혹은 누군가에게 해줘야 할 책임 같은 걸 떠올린다. 프랑클 자신은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기억과, 자신이 쓰고 있던 책과 연구를 다시 세상에 내놓겠다는 목표를 마음속에 품고 버틴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그냥 “성적 잘 받아야지”, “나중에 유학 가야지” 같은 목표는 있는데, 그게 정말 프랑클이 말하는 ‘의미’ 수준인가? 누가 나에게 지금 하는 공부를 왜 하냐고 물으면, 그냥 “나중에 잘 먹고 잘살려고요” 정도의 대답밖에 못 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조금 힘들어지면 금방 “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프랑클이 말하는 의미는 이런 가벼운 목표가 아니라, 진짜로 나를 끝까지 버티게 만드는 힘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부분은 “마지막까지 남는 자유는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라는 말이다. 수용소 안에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자유를 빼앗긴다.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도, 먹고 자는 것도 거의 통제된다. 생존 여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런데도 프랑클은 여전히 남아 있는 자유가 하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 상황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도 자기 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남을 위해 자리 하나 더 만들어 주거나, 인간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본다. 현실은 똑같이 지옥인데, 어떤 사람은 자기만 살겠다고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어떤 사람은 그 속에서도 나눌 줄 안다. 프랑클은 이 차이가 바로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환경이 아무리 최악이어도, 마지막 선택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한테도 조금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나도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그냥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어”라고 합리화할 때가 많다. 하지만 프랑클의 말대로라면, 그럴 때일수록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할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과제나 시험, 인간관계 문제라면, 이걸 불평만 하면서 버틸지, 아니면 뭔가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할지는 내 선택이라는 점에서, 나도 책임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후반부에는 프랑클이 자신의 심리학 이론인 ‘로고테라피’를 간단히 설명한다. 로고테라피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병들었을 때, 그 근본 원인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치료의 방향도 결국 “그 사람만의 의미를 다시 찾도록 돕는 것”이 된다. 이론적인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솔직히 살짝 어렵긴 했지만, 앞에서 나온 경험담과 연결해서 읽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현대 사회를 보면, 겉으로는 풍요롭고 편리한데도 불안하거나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또래들을 보면 “뭘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자주 한다. 나도 가끔은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하루하루 할 일은 많고 바쁘긴 한데,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서 불안한 느낌. 그런 점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완전히 다른 시대의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프랑클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힘든 경험을 무조건 “다 이유가 있다”라며 쉽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고통, 죄책감, 죽음 같은 어두운 요소들이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다만, 그 안에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태도의 선택이고, 의미를 찾으려 하는 노력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질문은 “그렇다면 나에게 삶의 의미는 뭘까?”였다. 솔직히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그래도 적어도 예전처럼 “그냥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면 되지”라는 수준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됐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지키면서 살고 싶은지,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지금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따뜻한 방에서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밤에 불 켜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이미 엄청난 특권이다. 이런 환경에서조차 불평만 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인지, 수용소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물론 이 책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프랑클의 관점에는 “개인의 태도”를 많이 강조하다 보니,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조금씩 바꾸는 것, 힘든 일 속에서도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같은 작고 구체적인 실천들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읽는 동안 편하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그냥 흘려보냈을 생각들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 “삶이 나에게 뭘 해 줄까?”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답할 것인가?”라는 프랑클의 질문은, 앞으로 공부를 하든, 유학을 준비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계속 따라올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적어도 하나는 분명히 느꼈다. 삶의 의미는 누가 대신 정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거창한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들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클이 수용소 한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의미를 향한 의지’를, 나 역시 내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붙잡고 살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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