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에 기대를 걸었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213p)”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의 연작소설로, 다양한 인물의 관점으로 쓰인 12개의 소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주인공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난장이는 노동자 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그의 행동과 그에게 주어진 상황을 통해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개발의 상황 속 짓밟힌 노동자의 삶을 다룬다.
난장이는 성실하게 노동했다. 자신이 할 수 있다면 수도 고치는 일, 서커스단 보조 등 무엇이든지 했다. 하지만 그의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들의 가족은 하루하루가 지겨운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람들은 난장이의 타고난 신체조건을 보고 ‘난장이’라고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어느 날 난장이네 가족들의 집에는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다. 도시 재개발로 인해 낙원구 행복동의 판자촌을 허물고 그 위치에 새 아파트가 들어오기로 계획된 것이다. 그들은 입주권을 받았지만 새 아파트에 입주할 형편이 되지 않았고, 그들의 이웃은 하나둘 아파트 입주권을 팔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터전인 집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권력 아래 무력하게 집은 허물어진다. 그럼에도 난장이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꿈꿨으나, 끝나지 않는 착취와 가치를 부정당하는 비극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도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다룬다.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우연히 한 마리의 갑충으로 변한다. 그는 집의 가장이었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갑충으로 변한 상태에서도 가족들을 위해 출근 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그는 실직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기에 그는 자신의 방 안에 숨어 아무 이득이 되지 않는 벌레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레고르의 가족은 그레고르가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를 경멸하고,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변신은 노동자의 삶이 상실된 것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상실된 것을 의미했다.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의 가족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들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났다.
두 작품에서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은 대비된다. 난장이에게 집은 노동을 통해 지켜내야만 하는 그의 최소한의 존엄성이자 희망이었다. 그레고르에게 집은 노동력을 상실한 후 또 다른 억압이 시작되는 공간이자 그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였다. 두 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폭력과 부정당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시사한다.
『변신』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세상에 나온 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가치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 노동력이 상실되거나,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보장받지 못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는가? 우리는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아가는 난장이들을 위선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두 작품은 오로지 쓸모와 생산성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난장이와 벌레가 될 수 있다. 사회에서 대체할 수 있는 부품으로 전락해 소외되어 가는 서로를 위해 우리는 난장이가 꿈꾼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