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모순을 한 여성의 일상적인 선택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사랑과 가족, 그리고 청춘의 불안이라는 주제를 안진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섬세하게 포착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춘의 얼굴을 보여준다.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사랑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진진이 고민했던 지점들이 현재의 나와 겹쳐지는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었다.
주인공 안진진은 결혼을 앞두고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음이 향하는 쪽은 자유롭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진사 김장우이지만, 그는 약속을 어기거나 불안정한 면모를 보이며 진진에게 계속 불확실함을 안겨주는 인물이다. 반면 나영규는 성실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아가며, 진진에게 꾸준히 연락하고 정성을 다해 마음을 표현한다. 설렘의 크기만으로 보자면 김장우가 앞서지만, 삶을 함께 꾸리려 할 때 필요한 안정감과 지속 가능성을 제공하는 인물은 나영규다. 두 남자의 대비는 곧 청춘이 마주하는 현실의 두 축을 상징하는데, 김장우는 이상을, 나영규는 현실을 상징하며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진진의 내면은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나는 특히 진진의 선택을 이해하는 중요한 축이 그녀의 성장 배경에 있다고 느꼈다. 진진은 어머니와 이모, 똑같이 쌍둥이로 태어났음에도 결혼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두 여성을 보며 자랐다. 어린 시절 공개수업에 이모를 불러왔다는 사실은 진진이 한편으로는 안정된 삶을 제공해 주는 존재를 동경했다는 미묘한 흔적처럼 다가온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그녀 내면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경제적 기반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며 성장한 진진에게 안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감각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결혼 현실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달리 실제 결혼을 준비해 보면 엄청난 비용, 가족 간의 갈등, 사회적 기준 등이 작용한다. 결국 사랑은 감정만으로 지속되기 어렵고, 함께 앞날을 계획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진진의 선택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선택으로 읽힌다.
작품을 읽으며 나는 진진과 나 사이에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나 역시 사랑은 감정의 크기보다 서로를 지속시키는 힘, 배려, 신뢰, 책임, 미래에 대한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진이 마음의 설렘보다 안정과 믿음을 가진 나영규를 선택한 이유를 정확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 오래 고민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어떤 선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가 선택한 방향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순 속에서 최선을 찾아 나간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청춘이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가족의 상처가 사랑의 방식과 결혼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예리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깊다. 다만 진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사회 구조나 주변 인물의 관점이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앞으로 독자로서 더 살펴보고 싶은 지점은 진진의 선택이 당시 한국 사회의 젠더 구조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사랑의 조건은 어떻게 규정되는지, 그리고 ‘모순’이라는 제목이 개인의 감정적 혼란을 넘어 사회적 모순까지 포괄하는지에 대한 점들이다. 이러한 관점을 더해 읽는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청춘의 삶을 깊이 있게 사유하는 사회적 텍스트로 확장될 수 있다.
결국 『모순』은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선택은 서로 다른 모순을 끌어안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진이 어떤 미래를 살아갈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상처와 현실을 직시한 채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 모습에서 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를 본다. 선택의 정답을 찾기보다, 선택 이후의 삶을 책임지고 단단하게 살아내는 힘. 『모순』은 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묻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