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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도서명
저자/역자
손원평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17-03-31
독서시작일
2025년 10월 14일
독서종료일
2025년 10월 31일
서평작성자
김*훈

서평내용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를 중심으로 인간성과 공감, 폭력과 상처의 문제를 세밀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편도체 기능 이상이라는 의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시작하지만, 이 설정을 단순한 질병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인간이 타자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천천히 해부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개인의 심리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관계, 공동체,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윤재는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도 명확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는 분노나 두려움 같은 기본적 감정조차 깊게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와 사회에서 자주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작가는 윤재를 단순히 ‘감정이 없는 특이한 아이’로 소비하지 않는다. 윤재는 주변과의 작은 상호작용을 통해 아주 미세한 변화들을 보이며, 소설은 그의 신체 반응과 사고의 흔들림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그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배워 나가고, 그 과정에서 감정의 조각 같은 것들을 서서히 체험하게 된다. 이 변화는 크고 극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 점이 현실성을 높이고 작품의 설득력을 강화한다. 윤재와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하는 곤은 감정의 과잉을 대표한다. 곤은 분노가 통제되지 않고 충동이 바로 폭력으로 이어지는 인물이다. 윤재가 감정의 결핍 때문에 사람들과 멀어진다면, 곤은 감정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스스로 파괴적 행동을 멈추지 못한다. 이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작품은 감정의 양보다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감정이 없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감정이 많아서 문제가 되기도 하는 상황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감정의 균형과 조절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작품의 중심에는 “감정은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배울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놓여 있다. 윤재의 변화는 의학적 치료나 극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천천히 쌓인 경험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는 감정이 본능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 교육, 상호작용을 통해 충분히 학습될 수 있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윤재가 느끼는 작은 동요나 혼란은 우리가 성장하며 겪는 감정의 작고 미묘한 형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독자는 그의 변화를 따라가며 감정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구조만으로 설명될 수 없고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작품에서 ‘소리’와 ‘침묵’은 중요한 상징처럼 작동한다. 윤재의 내면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때로는 작은 울림이 생기고, 그 울림이 감정의 싹처럼 퍼져 나간다. 곤의 세계는 반대로 소음과 충돌, 폭발로 가득하다. 이 두 세계의 충돌은 인간이 감정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거나 멀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소설에서 다루는 폭력과 상처의 문제는 단순히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이해와 오해, 결핍과 과잉 사이에서 생겨나는 현실적 문제로 접근된다. 작가는 인간의 악의나 폭력성을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고, 그 배경과 과정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게 만든다. 손원평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음에도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한다. 과한 비유나 장식 없이 상황의 핵심을 정확히 제시하며, 독자가 직접 장면의 감정선을 해석하도록 여백을 남긴다. 절제된 문장 속에서 등장인물의 변화와 갈등이 더 명확하게 떠오르고, 이 방식은 소설의 밀도를 높인다. 서사 또한 크게 과장되지 않고 현실에 가까운 흐름으로 진행되기에 독자의 몰입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이 작품의 의의는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나 지나치게 감정적 사람을 단순히 특이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다움의 스펙트럼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 있다. 감정은 단순한 생물학적 기능이 아니라 타자와 연결되는 통로이며, 그 통로가 열리고 닫히는 방식이 각자의 삶을 결정짓는다. 윤재의 변화는 작지만 의미 있고, 그 변화는 결국 인간이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조금씩 마음을 배우고,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고, 무심한 듯 보이던 세계가 서서히 따뜻해지는 과정은 독자에게 조용한 울림을 준다. 물론 작품에는 일부 한계도 존재한다. 윤재의 변화가 너무 미세해 극적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의학적 설정이 실제보다 단순화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제와 단순화는 오히려 인간 감정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더 보편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아몬드』는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소설이다. 감정의 결핍은 때로는 편함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타인과의 연결을 어렵게 만든다. 반대로 감정의 폭발은 관계를 파괴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손원평은 이 두 극단 속에서 균형의 가치를 강조하며, 감정이란 우리가 타인과 부딪히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아몬드』는 단순한 성장소설을 넘어서, 감정과 인간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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