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이에게는 그 사람만의 특이한 맛이 있다. 풍겨오는 향기, 닿았을 때의 감촉, 입에 남는 말의 식감까지. 어떤 맛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또 다른 맛은 혀가 아릴 정도로 쓴 내가 올라와 밀어내기도 한다. 이 맛들은 지위, 학벌 따위의 사소한 요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가 머금고 있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이야기는 불행이 있어야만 만들어진다. 생각해보자, 세상 누구라도 인생에 굴곡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완만한 언덕인지 서슬퍼런 돌산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각자의 불행을 품에 껴안고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이불 안에서 흘린 눈물의 달고 짠 맛, 폄하 당해 짓씹어 터진 입술에 앉은 딱지의 기묘한 비린 맛. 그런 것들이 오랫동안 속에 쌓이고 쌓여 사람의 맛을 만들어낸다.
조예은 작가는 마치 요리사처럼 이런 불행들을 활자로 옮겨낸다. 마치 코스요리처럼 이야기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마다 심혈을 기울여 독자들에게 내보인다. 어린 시절 삼켜버리고 싶던 잠긴 문의 기억, 수없이 줄을 늘어선 콘크리트 숲의 기억, 존재하지 않는 거울의 기억… <치즈 이야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첫맛은 조금 역겹게 느껴졌지만, 그걸 참아내면 곧 짭짤함, 달콤함, 감칠맛으로 변모해 어느새 다음 장의 페이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후에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야속하게만 느낀 것은, 첨예하고 냉소적인 문장들이 작가의 맛을 상상하게 될 정도로 미려하게 짜인 탓일 테다.
언젠가는 이 책을 읽어볼 당신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메뉴에 입맛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는 면도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세계관이 현실에 항상 발이 닿여 있지는 않다는 점을 미리 알리고 싶다. 다양한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면,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배경부터 시작해 외계까지 확장되는 세계에 조금 어색함을 느끼거나 이질적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입맛을 버릴 만한 게 아니라, 꼭 여태 먹어보지 못한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다가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준비된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나면 다시금 독자의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다른 이와 책에 대해 대화하며 가볍게 이야기를 털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진득할 정도로 따라붙는 책의 연장선이 이제는 내 삶의 맛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여태 맛본 타인의 삶이 아주 없을 맛이 아니라 나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뉴스와 인터넷으로 겉핥기만 하던 타인의 불행들이 어떤 것인지, 고작 몇 가지의 단어로만 압축된 삶들이 어떤 복잡성을 가지고 있는지 더부룩하게 위를 채워낸다. 이 불편함은 소화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동시에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모두 소화하고 나면 그 후의 자신은 어떤 맛이 되어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