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문장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대표작 <데미안>에서 나온 구절이다.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인간의 내면과 자아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선과 악, 빛과 어둠 사이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초반의 그는 ‘선한 세계’에 머물고자 하지만 동시에 ‘금지된 세계’의 매력에 끌린다. 착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두운 충동에 흔들리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내 안의 모순된 마음 때문에 자주 혼란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을 구분하려 애쓰지만, 그의 친구 데미안을 만나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며 결국 두 세계가 모두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온전한 유일신, 오랜, 그리고 새로운 맹약의 신이 탁월한 분이기는 하지만 원래 표상하는 그런 신은 아니라는 점이야. (중략)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선악의 이분법)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83p)”
이 장면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를 인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헤세도 나와 같은 고민을 겪었고, 결국 인간의 모든 면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중략)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169p)”
이 문장은 <데미안>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한다. 인생의 위기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싱클레어 역시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지만, 진정한 성장은 결국 그 스스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을 때 이루어진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며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해볼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또한 상징적 표현과 철학적인 대화가 많아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할 계기를 만든다. 반면, 상징이 다소 추상적이어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철학적 대화가 이어지는 부분은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왜 <데미안>이 청소년 권장 도서로 추천되는지 알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성인이 된 지금 읽으니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지만, 한참 자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던 사춘기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훨씬 일찍 넓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에도 ‘나’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하는 청소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고민이 끊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데미안>은 청소년 권장도서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뿐만 성인 독자들에게도 한 번쯤 자신을 깊이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상징한다. 철학적이고 상징적인 표현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본질과 자아의 의미를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정말 가치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