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부터 천천히 흘러가던 시간이 초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점점 시간이 빨라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말을 사는내내 계속 생각하며 체감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따라 계절은 매절기마다 쉬지않고 바뀌는데 정작 나는 그 계절을, 그리고 그 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나아가고만 있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던 나에게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은 따뜻하면서도 낯설었다. 이내 행복에도 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건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일.”
책을 읽으며 이 한 문장이 내게 오래 남았다. 당장 눈 앞에 놓인 해야 하는 일만을 바라보던 일상 속에서 ‘지금 챙겨야 할 기쁨’이 무엇인지 잊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답을 사계절의 세밀한 결 속에서 찾아낸다. 봄에는 새순의 숨결을,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의 웃음을, 가을에는 낙엽이 흩날리는 길 위의 여유를,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탁의 온기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닌, 지금의 계절에 나를 맞추고 잘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의 햇감자와 시원한 맥주, 입동의 김장 냄새처럼,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이 제철 행복이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 ‘제철’을 붙이자 사는 일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이 구절이 유난히 가슴 깊이 다가왔다. 좋아하는 일뿐만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감정에도 제철을 붙이게 되면 괜히 더 특별해지는 기분이다. 이때의 ‘제철’은 단순히 자연의 시간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적절한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봄에는 포근한 벚꽃을 즐기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고요한 저녁바람을, 가을에는 단풍을 밟고, 겨울에는 따뜻한 국물을 먹는. 이러한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제철 행복이 된다는 사실을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책을 통해 제안하는 삶의 방식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실천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다시말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지금 챙겨야 할 기쁨, 즉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허락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철을 생각하고 느끼며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메시지 자체는 크게 와닿는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계절을 즐길 여유가 없는 사람들, 생계를 위해 현재의 시기를 감각하는 행위보다 버텨내는 일이 우선인 사람들에게는 이 메시지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제철 행복』은 현재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크든 작든 나만의 제철의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묻고싶다. 지금 이 계절 속에서 당신의 제철 행복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