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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의 슬픔, 약속의 행복
저자/역자
김신지
출판사명
인플루엔셜
출판년도
2025-07-31
독서시작일
2025년 10월 25일
독서종료일
2025년 10월 31일
서평작성자
김*현

서평내용

 제철 행복. 행복에도 알맞은 시절이 있다니, 재밌는 제목이다. 김신지 작가는 1년을 24번의 절기로 나누었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때의 날씨, 나무, 동물, 식물, 바람, 햇빛, 또는 음식에서 행복을 찾는다. 사실, 찾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그녀는 이미 달력에 24번의 행복을 ‘심어놓았다’. 새싹을 심고 씨앗이 싹트기를 기다리듯, 그녀는 행복을 기다린다. 행복은 준비하고, 기다릴 때 비로소 찾아온다. <제철 행복>은 지친 현대인들의 운명론에 대한 저항이자, 회의론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24번의 절기. 시간을 잘게 나눌수록 그사이 변화는 작아진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 장점은 각 장마다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다. 입춘에서 아직 녹지 않은 눈 아래의 새싹을 찾는다면, 우수에서는 녹은 눈 아래로 부드러워진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을 발견한다. 입추에 찾아온 제비는 백로에 남쪽으로 떠나고, 북쪽에서는 기러기가 찾아온다. 춘분과 추분은 둘 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지만, 춘분이 지나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추분이 지나면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이렇듯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자연의 섬세한 변화를 비교하는 일은 계절로 뭉뚱그려서는 불가능하다.

 단점은 절기마다 중복되지 않은 내용으로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점이다. 반복은 작은 차이를 발견하게 하지만, 지루하기도 하다. <제철 행복>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 각 시기에 지어진 사료들, 그리고 생물학적 지식들. 나는 사료와 지식보다 그녀의 경험이 훨씬 궁금하다. 나무와 꽃을 구분하는 방법은 식물도감에서 찾고 싶다. 아쉽게도, 작가는 세 개의 내용에 비슷한 분량을 내어준다. 개념적 설명 없이 24번의 반복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기획의 성공이자 구성의 실패다.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는 여기에 머물고 싶지만 세상은 언제나 한발 앞서가고, 그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슬프다. 앞서가는 시간을 계속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한 슬픔이다. 왜냐하면 냉혹한 시간의 필연적 속성을, 반드시 지켜질 약속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지구와 태양이 만들어낸 약속. 4개의 계절에서 24번의 절기로 더 잘게 나뉜 1년은 앞서간 시간의 재촉이자, 우리가 도달할 약속일이다. 그 기약의 시간들은 각자의 선물을 지닌 채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의 첫 문장. “긴 겨울을 지나 봄에 도착했다.” 수 차례의 계절을 지나 새로운 봄을 맞으며 우리에게 도착한 책. 저자의 말을 빌리면, <제철 행복>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이별도 결별도 아닌 작별이다. 나는 책과 인사를 나눈다. 기다림의 인사. 봄의 꽃이 피면, 여름의 장마가 오면, 가을의 낙엽이 지고, 겨울의 눈이 내리면 <제철 행복>은 항상 한발 앞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미리 심어놓은 행복을 찾으러 가야겠다. 봄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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