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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의 세계를 치즈 한 조각에 담아
저자/역자
조예은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25-07-30
독서시작일
2025년 10월 11일
독서종료일
2025년 10월 25일
서평작성자
이*원

서평내용

작가는 하나의 세계다. 그곳에서 겪은, 그러니까 만들어낸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 독자에게 내민다. 이번에 작가는 독자에게 치즈를 내민다. 표지에는 그 흔한 제목, 지은이, 출판사.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탐스러운 노랑과 주황색 구멍 송송 뚫린 치즈가 있을 뿐이다. 표지를 넘기기 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단서는 오직 ‘치즈’. 그러니 열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바로 꿈속의 그 맛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맛을 찾아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치즈 이야기』 中 「치즈 이야기」, 16p

 

치즈는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숙성하는지, 어떤 환경인지에 따라 제각기의 맛이 난다. 종종 어떤 치즈는 냄새로 연상시킬 수 없었던 맛이 나기도 한다. 이 단편집 또한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키워드를 섞어 만들어진 이야기는 모두 다른 맛으로 준비되어 있다. 어떤 이야기는 입맛에 맞고, 어떤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예은이라는 치즈 제작자의 매력은 어떤 치즈에서나 한 번 정도는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얼결에 고개를 끄덕인 후, 성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했다. 경찰은 피곤한 얼굴로 떠났다. 그런데 그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건 집주인이고 나는 방에서 덜덜 떨었을 뿐인데 왜 나에게 그런 핀잔을 주는 거지? (『치즈 이야기』 中 「보증금 돌려받기」, 47p)

어떤 치즈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세입자가 정해져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집주인과 맞서는 이야기는 현실이 녹아들어 있어 독자에게 불쾌감 혹은 답답함을 선사한다.

 

기억이란 이런 거군.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찰나의 자극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영영, 아주 사라진 것 같은 기억들도 사실 어딘가에는 남아 있으려나?” (『치즈 이야기』 中 「두번째 해연」, 235p)

어떤 치즈는 향긋한 냄새가 난다. 한 사람의 영혼을 물려받은 로봇의 이야기는 연민을 한가득 불러일으킨다.

 

2100년이 다가올수록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했고, 내가 마음을 두던 것들 역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그보다 더 굉장한 기세로 무수히 많은 새로운 물건과 기술들이 쏟아졌지만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치즈 이야기』 中 「안락의 섬」, 285p)

어떤 치즈는 맛을 표현하기 어려워 모호하다. 안락사를 통해 죽음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는 독자를 깊은 사유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섬뜩한, 감정을 쏟아내는, 서정적인 장면을 가리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조예은 특유의 문체는 작품 속 허구와 진실을 모두 섞어 다져버린다.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 생생하게 느껴지다가도 틈새에 허구가 끼어든다. 그저 환상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현실로 잡아 끌어내린다. 이로써 작가는 작품과 독자와의 거리를 의도대로 조절하고, 독자는 알지 못하게 끌려다님으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허구와 현실, 여러 감정과 사유. 이 모든 것을 섞어 숙성한 결과물 『치즈 이야기』, 조예은의 치즈. 처음부터 받아 들지 않았으면 모를까 한 번 받아 들면 작은 조각도 남기지 않고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달짝지근하기도, 짭조름하기도 한, 부드럽기도, 거칠기도 한 맛과 식감” (『치즈 이야기』 中 작가의 말, 353p)을. 작가는 세상에 내밀었고, 이제는 독자의 차례다. 한입에 전부 넣고 씹어먹을지, 아니면 천천히 한 조각씩 음미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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