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라는 달콤하고 발랄한 제목은 위험한 덫이다. 이 한없이 친근하고 평범한 단어 뒤에 숨겨진 세계는, 조예은 작가 특유의 잔혹하고 기이한 SF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조예은 작가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 『치즈 이야기』 (문학동네, 2025)는 독자를 안온한 현실 밖으로 끌어내어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지독한 생존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총 일곱 편의 SF 단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방치된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삶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인물들은 흔히 그러하듯 공포에 굴복하거나 상실을 ‘회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상처를 스스로 인정하고 질문하며 현재를 재구성하는 길을 택한다. 이 소설의 매혹적인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기이하고 끔찍한 설정 속에서, 인물들은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더 나은 삶을 바라보는 지난한 과정을 숙성시키는 것이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SF 장르의 특징은 우리 시대의 불안과 상처를 극단적인 이미지로 치환하는 데 있다. 근현대사 작품에서 느꼈던 배고픔과 기생, 그리고 벌레 같은 인간들 속에서의 처절한 발버둥의 잔인함이, 작가의 손을 거쳐 SF 장르의 고어 요소로 현대적으로 치환된 점은 주목할만 하다.
특히 초반 두 단편에서 드러나는 ‘식인’ 코드는 일반적인 잔혹함을 넘어, 인간의 왜곡된 욕망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파고든다. 『구의 증명』이 ‘너무 사랑해서 하나가 되고 싶어’ 행하는 애정의 극대화로서 식인을 다뤘다면, 『치즈 이야기』의 식인은 ‘방치당한 이가 유일한 사랑이자 보호자를 직접 방치하며 겪는 잘못된 애정과 결핍’에서 비롯되는 고통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조예은 작가는 이러한 충격을 소설집의 구성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치한다. 초반 두 단편에서 충격을 던진 후, 네 번째 수록작인 「반쪽 머리의 천사」를 배치하여 분위기를 ‘환기’ 시킨다. 이후의 단편들은 기계와 우주를 테마로 하며 SF적 사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구성의 분수령 역할을 하는 「반쪽 머리의 천사」는 잔인한 6개의 단편과 비교되는 따뜻함과 포근함 때문에 가장 인상 깊었다. 주인공인 육상선수 출신 ‘우승하’는 자신이 인생의 엑스트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대변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여야 하지만, 현실의 좌절 앞에서 스스로를 조연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이때, 영화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참혹한 희생자 ‘기주영’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아닌, 작품을 좋아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유쾌한 상상이 현실이 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반쯤 뭉개진 머리에 피를 흘리며 등장한 기주영의 몰골은 잔인하지만, 기주영이 우승하 곁을 떠나 소멸되는 모습은 따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이별의 순간조차 슬프기보다는 포근함을 남긴다. <천사는 없어>의 세계에서 기적처럼 탄생한 반쪽 머리의 천사는 폭력과 상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가 결코 붙잡고 싶은 인간적인 애정과 구원의 순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상황 속에서, ‘잔혹한 세상 속에서도 엑스트라의 삶은 충분히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씁쓸하면서도 다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냉혹한 질문과 씁쓸한 희망의 무게는, 소설집을 덮은 뒤에도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조예은의 『치즈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방치한 상처를 SF적 메타포를 통해 낱낱이 해부하는 소설집이다. 이 책의 인물들은 상실을 굴복하거나 애써 ‘회복’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고어와 식인이라는 잔혹한 장치를 통해 인간의 고통과 사랑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작가의 상상력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인정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강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소설집이 선사하는 날카로운 통찰과 충격적인 감각 때문에 솔직한 비추천 대상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밝고 단순한 제목과 표지에 속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펼칠 수 있는 청소년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단호히 권하지 않는다. 특히 표제작을 비롯한 몇몇 단편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고어 묘사와 식인 코드는 미성숙한 독자에게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으며, 책임 있는 독서 환경을 해칠 수 있다.
이 소설집은 삶의 잔혹함과 부조리를 견뎌내고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성숙한 독자들에게만 추천되어야 한다. 작가가 치즈 덫 속에 숨겨 놓은 씁쓸하지만 포근한 희망을 찾아낼 용기가 있는 독자라면, 『치즈 이야기』는 강렬한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