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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에서 길을 묻다
도서명
저자/역자
헤르만 헤세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09-01-20
독서시작일
2025년 09월 20일
독서종료일
2025년 09월 22일
서평작성자
강*수

서평내용

 

“많은 사람이 우리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 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이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는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

 

20살이 된 올해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읽은 데미안은 이전에 읽었던 느낌과는 다소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어쩌면 나 역시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사는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데미안』에서 제시하는 ‘죽음과 새로운 탄생’의 의미가 싱클레어라는 인물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이야기가 오늘날 계속해서 방황 중인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지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더 나아가, 싱클레어가 결국 ‘바른 길(?)’을 찾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책의 메세지가 지닌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데미안』은 독일의 문학 거장 헤르만 헤세가 1919년에 발표한 소설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존재론적 고독과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책이다. 단순히 싱클레어, 한 소년의 성장기를 넘어, 그 성장 속에서 유년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자아가 형성되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 그리고 그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탄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극명한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유년의 안락함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알을 깨고 나와 ‘새로운 탄생’을 맞이하라고 끊임없이 부추기는 멘토로 등장한다.

‘아브락사스’의 개념을 제시하며, 빛과 어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죽음’을 통해 선과 악 모두 포용하는 온전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편안하지만 나약한 유년의 자아에 대한 ‘죽음’을 감내하고, 고통스러운 파괴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새로운 탄생’이 가능하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일깨운다.

이 부분은 특히,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20살인 나 역시 사회가 주입하는 이상과 현실, 기대와 좌절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기존의 자신과 이별하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에 서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죽음과 새로운 탄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성장과 방황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모든 세대가 겪어 가고 있으며,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기 자신을 재정립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이 책은 ‘유년의 죽음’을 넘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함으로써, 사회가 강요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주체적인 태도에 대해 고민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데미안』이 100년도 전에 쓰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이 방황하고 있는 20대에게 여전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선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하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데미안』이 제시하는 ‘죽음과 새로운 탄생’의 서사가 모든 독자에게 완전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는 싱클레어가 결국 ‘바른 길(?)’을 찾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최종적으로 맞이한 ‘새로운 탄생’은 과연 온전한 평화와 안정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나 에바 부인과 같은 타인 없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이는 내면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결말일 것이다. 외부의 해답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새로운 탄생’을 이루어야 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결말이 오히려 ‘새로운 탄생’ 이후에도 끝없는 ‘죽음’과 ‘탄생’의 과정이 반복될 것임을 보여주며, 진정한 안정이나 해방보다는 또 다른 고독과 책임이 지속된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즉, 『데미안』은 영원한 ‘새로운 탄생’을 약속하기보다, 삶이란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죽이고’ 새로운 것을 ‘탄생’시켜야 하는 과정의 연속임을 깨닫게 하는, 어쩌면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오히려 독자가 자신의 내면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자기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도록 하는, 이 책의 ‘한계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0살인 나에게 『데미안』은 많은 혼돈과 방황 속에서 내가 겪는 고통스러운 혼란과 ‘죽음’이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동시에 싱클레어가 맞이한 ‘새로운 탄생’이 과연 온전하고 행복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완벽한 ‘새로운 탄생’이란 없으며, 삶이란 곧 ‘죽음과 새로운 탄생’의 반복적인 과정임을 깨닫게 했다. 싱클레어의 마지막 모습은 안정적인 정착이 아닌, 내면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지속적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이 성장의 본질임을 시사하고 있다.

나 또한 세상에 맞추어 삶의 명확한 목적을 찾기보다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에 충실하고 싶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결국 『데미안』은 명쾌한 해답보다는 가치관에 대한 ‘죽음’과 ‘탄생’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방황하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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