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은 내 주변의 읽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칭찬을 하길래 나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읽게 되었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주인공이 데미안이고, 이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엄청난 모험심을 가지고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주인공은 데미안이 아닌 에밀 싱클레어였다. 게다가 첫 장을 읽었을 때는 모험과는 다른 초등학생이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싱클레어의 내면이 느껴졌다. 이야기가 더 전개되고 중 후반부에 와서 자신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얘기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나도 요즘 싱클레어처럼 나만의 길을 찾고 있어서 그럴까, 싱클레어가 마치 내가 된 느낌을 받았다.
싱클레어가 생각하길 원래 세상은 이분법적이었다. 밝음과 어둠, 부모님이 계시던 밝은 세상, 프란츠 크로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어두운 세상. 하지만 싱클레어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싱클레어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이 선과 악, 두 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의 삶이 선과 악 두 개가 공존하는 그라데이션처럼 연결되어있다. 문제는 그들의 세상은 싱클레어의 세상처럼 독보적이지 않다. 그들은 남들을 따라가고, 남들이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들의 세상에 그들 자신만의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것을 추구해야한다. 남들의 세상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길 잃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데미안, 싱클레어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 말은 정말 내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에 정말 할 일도 많고, 많은 일이 겹쳐와서 힘들지만 지금 나는 내 기존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싱클레어처럼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전개되고 나니,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마음속 수호자 였음을 깨달았다. 데미안의 어머니도, 데미안도 싱클레어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왔으니 말이다. 피스토리우스로부터 아브락사스를 배웠지만,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를 마음속으로 내재화하며 실행으로 나아갔고, 피스토리우스는 음악, 종교로서 추구했다. 그런 둘의 상대적인 이념 때문에 둘은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싱클레어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싱클레어처럼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나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조금 어려웠다. 데미안이 하는 난해한 말들, 이마에 표적을 가지고 있는 사내, 피스토리우스의 철학들이 완전 이해가 되지는 않아서 왠지 한 번 더 읽고 싶다. 또한 ‘싱클레어가 그린 그 그림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람, 그 새들은 그저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을 의미할까?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한 번 더 읽으면 싱클레어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