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구멍 난 조각 치즈를 들여다보듯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다. 책을 펼쳐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생각하다 순식간에 다 읽게 될 것이다. 『치즈 이야기』라는 제목과 달리 단순히 치즈에 관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책 속엔 다양한 기억이 조각된 단편들이 담겨있다. 일곱 편의 단편이 등장하며 낯설 수 있는 감정을 오묘하게 풀어낸다. 일상에서 눈여겨보지 않던 불편한 감정을 책 속에 끌어내며, 독자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표제작인 ‘치즈 이야기’는 책을 대표하며 제일 처음 등장하는 단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을 방치하는 것을 치즈가 숙성되는 것에 비유한 점이다. 치즈가 숙성되는 것처럼 우리의 상처받은 기억들도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상처받았던 기억에 대한 복수와 증오라는 감정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안타깝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이 있는 감정이 느껴졌다. 또 이어지는 보증금 돌려받기는 현실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고 사람들의 이중적인 내면 또한 엿볼 수 있다.
다음 이어지는 단편인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은 쌍둥이 자매가 각자 상처받은 마음에도 본인을 소모하여 상대를 살리려는 모순적인 느낌이 든다. 다음 단편인 ‘반쪽 머리의 천사’는 한 배우의 죽음 뒤 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현실로 나왔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이더라도 현실에 나와서는 조연이어야 하는 삶에 허망함을 느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다음 단편들부터는 SF적 요소가 담겨있다. 나에게도 인상 깊은 단편인 ‘소라는 영원히’에서는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건을 만지게 되면 그 물건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주인공이 알게 되는데 그것을 저주라고 표현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공감되었다. 그로 인해 느꼈을 고통이 책을 통해 독자인 나에게도 전해진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는지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단편이다. 다음 ‘두 번째 해연’은 인조인간인 딸을 반대만 하던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뭉클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안락의 섬’을 읽으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혼자 감당해야 할 외로움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체감했음에도 나는 생을 거절할 수 없었다.” p.327
그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작가가 전하고픈 의미가 잘 담겨있는 듯하여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는 동안 각 단편에 몰입하여 잊히지 않는 기억이 가끔 무겁게 다가올 수 있지만 때로는 위로도 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처음 단편을 읽기 시작하면 집요한 묘사에 난해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 나갈수록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어 좋았다. 곱씹어볼수록 표현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과 나의 관계로 인해 존재한다는 삶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다.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 기억이 주는 힘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은 짜고 달고 역하며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