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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의 틈새로 날아가는 소년 엿보기
도서명
저자/역자
헤르만 헤세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09-01-20
독서시작일
2025년 09월 23일
독서종료일
2025년 09월 27일
서평작성자
이*원

서평내용

   헤르만 헤세의 고전 성장 소설 제목인 『데미안』.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한 번 정도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이름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깨닫는다’는, 단순 외면적 성장이 아닌 내면적 성장을 다룬 소설은 출간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사에 지워지지 않을 하나 획을 그은 이 책은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에서 떠나지 않는다. 독자는 종이 위에 적힌 검은 글씨를 통해 한 사람의 유년기부터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시도와, 갖은 고난과, 고뇌와, 실패와, 성공까지도.

내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꾸며 낸 이야기들처럼 달콤하거나 조화롭지 않다. 무의미와 혼란, 착란과 꿈의 맛이 난다. 이제 더는 자신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모든 사람의 삶처럼.

p10-11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제목은 ‘데미안’이지만 그는 등장인물에 불과하며 화자이자 주인공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다. 따라서 독자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오직 싱클레어의 생각뿐이다. 독자 또한 한 명의 관찰자임에도 다른 등장인물의 생각을 읽을 방법은 없고 싱클레어의 생각을 따라 추측해야 한다. 데미안은 친구이자 인도자이자 신비로운 이로 남고, 에바 부인도 데미안의 어머니이자 이상理想적인 여성으로 남는다. 독자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인물의 대사, 그리고 싱클레어의 서술이자 독백이 전부다. 결국 독자는 싱클레어와 함께한다. 그의 시선으로 보고, 그의 발로 지면을 걷는다.

   유년 시절의 크로머, 중등학교 시절의 방황, 대학 시절의 회의. 우리는 싱클레어 생애 전반을 엿보며 그의 성장을 지켜보게 된다. 싱클레어 또한 여느 개인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소년은 자처하여 방황하기도 하며, 다시 길을 찾아 걸음을 나서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종장에는 인도자 데미안과 하나가 된다. 즉, 완전한 자아에 도달한다. 그러나 모두가 싱클레어처럼 고난 이후에 완전한 자아에 도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드문 일이며, 이상적인 결과에 가깝다. 독자에게는 데미안과 동일시되는 인도자 자체를 만난 경험이 없을 수도 있다. 혹 현재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 상태라면 깨달음보다는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갑자기 예리한 불꽃 같은 인식이 나를 불태웠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누구도 직분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세계에 무언가를 주겠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p168-169

   독자의 감상이 어떠하든, 이미 쓰인 텍스트 속에서 싱클레어는 나아갈 뿐이다. 고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현재와 많은 것이 다른 과거에 쓰였으나, 현재까지 꾸준히 읽히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싱클레어의 성장은 독자에게 깊은 위로와 깨달음을 선사한다. 즉, 그의 성장은 지켜볼 가치가 있다. 싱클레어에게는 직접적 경험이지만 독자에게는 간접적 경험이다. 하지만 이또한 분명히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고, 이는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스치듯 지나간 말이 선택에 도움이 되고, 우연히 만난 사람이 인연이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p122

   싱클레어는 알을, 세계를 깨고 신에게로 날아갔는가? 이해와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데미안』은 읽는 시점에 따라, 횟수에 따라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읽는 것과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의 삶을 보낸 후 읽는 것이 다르고, 한 번 읽을 때와 세 번째 읽을 때의 감상이 다르다. 신에게 날아가기 위해, 독자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알로 대표되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 여러 시도를 통해 이곳저곳에 균열을 내기 위해 시도할 수 있다. 이따금 생각이 나면, 『데미안』을 다시금 읽어보길 권한다. 같은 곳은 여러 번 두드리면 작은 틈새가 생겨 세상 너머를 엿볼 수 있을지 누가 아는 일인가. 이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누가 아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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