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 산듯한 냉소적임.
감각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만 그 감각이 사라진 이후 몰려오는 자괴감과 자기혐오 또한 알고 있어 이성 중심적인 삶을 사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와 꽤 겹쳐 보였다. 혼자서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사람의 온기를 사랑할 줄 알지만, 그 또한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아 애초부터 거기에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점까지도. 상실이 두려워 얻는 것을 피하려 하고, 홀로 있기엔 너무도 외로운 인간의 이야기.
읽다 보면 번잡한 설명 없이도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배경과 머릿속으로 바로 전해지는 인물들의 감정이 한때 베스트셀러이며 지금도 자주 회자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가상 인물들의 성격과 인간관계, 환경 등을 섬세하게 설정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작가의 세계관, 전하고 싶은 말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잘 받아들여진다. 비유법이나 돌려 말하기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 같달까.
전반적으로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자신이 인지하는 콤플렉스부터 정신적인 면모에까지 하나씩은 불완전한 부분들이 있다. 이 책의 인물들이 특별한 점이라면, 저마다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매사 제3자인듯한 말투와 그 말투에서 묻어나는 체념한 듯한, 냉소적인 느낌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어 자신과 그 외 타인들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모습이 내겐 외견과 성분은 모두 같은 인간이지만 어딘가 다른 종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자신과 유사하게 생겼으며, 저들끼리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는 그들을 관찰하고, 때론 직접 교류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다만 <노르웨이의 숲>의 다른 제목인 ‘상실의 시대’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 변화의 계기는 대부분 ‘상실’이다. 소중한 것, 당연히 존재하던 환경,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가며 피할 수 없는 변화를 겪고, 그 혼란스러운 변화 속에서 주인공은 더욱 단단해지고 벼려진다.
어쩌면,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성장하는 것 만이 이상이라고 교육받은 현세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는 실패와 상실을 통해 불완전한 우리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게 하는 이 <노르웨이의 숲> 같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