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사이의 장르이다. 글과 그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그렇기에 만화를 볼 때 우리는 그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 활자의 간접성과 이미지의 직접성 사이에 말이다. 그렇다. 본디 만화란 “사이 장르”이다. 두 가지 성질을 다 띄는 이 독특한 장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곧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이도 저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될 수 없기도 하는 이 경계면에선 항상 문제작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수많은 문제작들 중에 인터넷을 유랑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본 적이 있을 법한 그 정체불명의 캐릭터와 이것이 나오는 만화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처음 연재하던 이 만화는 결국 독자들의 펀딩에 의해서 <김케장 단편선>이라는 실물로 탄생되었다. 이러한 문제작을 들여다 보기 전에 우리는 그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먼저 탐구해봐야한다.
우선 빠른 이해를 위해 김케장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따라해 보겠다.
지금 보고 인는 이런 맗투헤 기시감을 느끼지 2들은 분면희 John재할 것이다. 이와 가튼 정체불명예 어two를 구사하는 만화들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what?
맞춤법을 파괴하고 숫자와 영어가 혼재된 이 말투를 보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어투가 김케장의 만화를 재단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위의 예시는 케장 특유의 어투만 따라했지만 사실 자동기술법과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만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을 옮겨적지는 못 했기에 그의 책으로 흐름들 설명하겠다.
우선 단행본의 첫장에서 감사인사을 보면 알겠지만 케장은 장광설을 구사한다.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라는 사전적 정의와 상동하게 말이다. 우리가 주목할 키워드는 “쓸데없이”이다. 그의 만화도 장광설을 구사한다. 쓸데없이 많은 말을 구사함으로써 그 무의미성을 드러낸다. 모순적이다. 많은 말은 무의미성을 표현하기 위함이고 이런 무의미성은 또 다른 의미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많은 말은 의미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 결과 쓸데없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제 그의 만화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알아보자.
<김케장 단편선>의 152p에 있는 만화 <모 아니면 도>를 보자. 주인공은 연신 “모 아니면 도”를 외치며 그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각각의 도들은 “빈부격차의 극심한 도(度)”, “켜보기 전까진 구현 여부를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광선검을 닮은 바람을 가르는 도(刀)”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의 도(道)”를 이야기 하면서 진정한 “도”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그러나 이 의미없는 여정은 지켜보는 주변인들을 졸도(倒)시킨다는 결말로 만화는 끝나게 된다. 이 무의미한 만화에서 간단히 의미를 찾자면 지금 본인만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하는 어떤 행위가 사실 지독히 무의미한 것이고 이러한 행위의 반복은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이들에게 고통만을 준다는 해석 정도가 되겠다.
기승전결이 존재해야하는 서사의 구조에서 케장은 짧은 호흡과 함께 기승기승기승의 구조로 만화를 그린다. 앞의 만화도 14컷의 짧은 만화 안에 사실 2컷 내지는 3컷의 만화가 위에서 설명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반복되고 있는 구조이다. 언어유희를 통한 이러한 특정 지점들의 연결과 중단은 서사의 탈취가 서사의 확장보다 우위에 서게 해준다. 이 단순함은 자연스레 서사의 부재를 이끌고 그 충격적임은 독자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제 김케장의 만화를 처음 보는 이들은 어떤 느낌인지 지레 짐작했을 것이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만화에 맥락이 없다. 아니 작가는 의도했을 지도 몰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못 알아본다는 게 맞겠다.
이제 이 맥락 없는 만화의 이미지에 주목해보겠다. 만화는 활자의 간접성과 이미지의 직접성의 조화라고 했다. 하지만 케장의 이미지는 극도로 생략적이다. 당장 컴퓨터로 메모장을 켜서 마우스로 사람을 그려봐라. 아마 꽤나 높은 확률로 케장의 그림과 비슷할 것이다. 케장의 만화는 마치 자신의 서사와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단순하다. 최소한의 서사를 인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그림은 그의 언어와 매우 유사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 사이 공간에서 케장은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버렸다. 활자의 무의미성과 이미지의 생략,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투와 서사의 파괴. 사실 이 독특한 만화를 이해 위해서는 각종 인터넷 드립과 서브컬처에 정통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서술한 의식의 흐름은 무수한 드립과 드립의 연결이기 때문이다. 그후 케장만의 서사구조를 이해하고 그와 동화되는 순간. 읽는이는 그 컬트적인 재미를 느끼며 왜 그렇게 사람들이 이 조악한 만화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