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를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감정, 성향, 지식에 따라 결정된다. “아만보”라는 말이 있다. 뭐 특별한 뜻은 없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다.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똑같은 책을 읽어도, 똑같은 영화를 봐도, 똑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번에 <메타피지카 공주>를 읽으면서 더 견고해진 생각이다. 단순히 세 명의 어린 아이들이 나쁜 왕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혼돈의 마녀와 회의주의 난쟁이를 물리치고 동굴에서 평생을 살아온 포로를 구하고 힘에의 의지 앞에서 자유를 증명하며 최종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들을 해소한다.
이제 슬슬 이것이 어떤 책인지 눈치를 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철학책이다. 메타피지카라는 단어에서 형이상학을, 회의주의에선 데카르트와 흄을, 동굴과 포로에선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힘에의 의지에서는 니체를 떠올리며 눈치챘을 것이다. 상기된 단어, 인물, 개념을 아는 사람들은 말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하지만 철학 입문자를 위한 소설이다. 철학 소설로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와 비교하면 개인적으론 더 만족스럽고 재밌었다. <소피의 세계>는 철학사 자체에 더 치중하였기에 단순 철학사를 문어체로 풀어만 쓴 느낌이 든 반면, <메타피지카 공주>는 철학사보단 철학과 각 철학자의 이념에 더 집중한 느낌이다. 그래서 철학사적인 시간 구성이 있는 것은 아니면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특정 철학자를 의미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이능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의 느낌도 꽤나 난다.
간단한 예시로 주인공 중 한 명인 “칼레 막스”는 이름에서 느끼듯이 “칼 마르크스”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소설 속에서 계급에 반대하고 노동을 신성시하며 조금만 분쟁이 일어나도 바로 “혁명! 혁명!”이라며 소리치는 혁명충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은 플라톤을 상징하는 어머니와 칸트를 상징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플라토니쿠스-칸티쿠스”다. 길고 긴 철학사의 토대를 마련한 두 인물의 이념을 모두 따르기에 작중에서 사고의 폭이 가장 넓어 보이는 그는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해내는 인물이다.
이 책은 두 가지 귀착점이 있다. 그것은 소설의 내용적 구조와 철학적 질문이다. 소설의 내용적 구조로는 책의 시작에서 주인공은 안개가 걷힌 호수를 보고 싶은 체 떠났지만 결국 책의 끝에선 안개가 남은 호수를 보면서 만족한다는 것. 그리고 소설의 철학적 질문의 측면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여행의 끝이 같은 질문으로 결국 독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우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지각하고 오성을 통해 그것을 구별하고 그것과 도덕성을 토대로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여하여 조금 더 많은 행복과 앎, 조금 더 최상의 선, 조금 더 올바른 양심을 희망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인식의 능력, 도덕적 능력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성적 존재”라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적 구조를 끝으로 마무리하겠다. 소설에서 말하는 안개가 덮인 곳을 나는 우리가 알지 못 하고 볼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가 모든 세상을 다 알고 싶듯이 주인공 또한 안개가 하나도 없는 호수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모험을 다녀오고 많은 것을 배우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바로 그 안개 덕분에 더 알 수 있다는 것, 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 방해물이 아닌 지식을 위한 도구가 된 것이다. 여행을 통한 새로운 앎이 안개를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 책도 안개와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이는 이 책은 또한 앎을 더 확장시켜준다. 철학적 지식이 전무한 경우엔 그냥 누군가의 재미없는 모험기일 수 있지만 그 지식이 많을수록 흥미로워지고 나아가 이 책은 사유를 확장해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세상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더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