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일을 하느라, 혹은 돈을 잘 버는 직장을 가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느라 책 한 권 읽을 여유도 잘 나지 않는 지금이다. 문득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속도는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못한 것처럼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멈추어 있다.
멈추어 있던 ‘나’에게 새로운 계기를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상현상이다. 나의 마음을 나보다 잘 아는 유령, 기이한 해파리 바이러스, 내 집에서 나무가 된 남자, 사이비 신도가 되어버린 동창,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름을 가진 도마뱀의 실종, 처음 보는 남자의 동면 준비, 시선으로 벽을 뚫는 유와 킬러가 된 나, 죽은 뒤 이승을 떠도는 나.
이야기 속 세상에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작가는 담담한 문장 속에 현실을 녹여 서술하고 있다.
‘기적을 바라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나는 매장을 청소하며 생각했다. 실망이 쌓이면 분노가 되고, 분노는 결국 체념이 되니까.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는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24p) 큰 기대를 하면 큰 실망이 찾아오기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죽어서 유령으로 나타난다 한들 사람들이 독립영화관을 찾지는 않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관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계속해서 사라졌고,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지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의문인 곳이었다.’ (102p)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어 잊혀 가는 예술과 문학. ‘한때는 내가 나의 자랑이었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로 나를 먹여 살려 왔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대학도 졸업했으니까. 그러나 지난 2년간 취업에 실패하면서 내 세계는 점점 좁아졌다.’ (242p) 번듯한 곳에 취업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강박.
암울하기 그지없는 현실의 문장들 사이에, 눅눅하기 짝이 없는 텍스트의 향연 사이에. 작가는 한결 숨을 트이게 할 희망을 불어넣는다. 거대하거나 극적인 것이 아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28p) 또 다른 나 자신에게 받는 온전한 이해, ‘다시 노래를 부르고 다시 망하거나 망하지 않을 것이다.’ (72p) 잊고 있던 꿈을 향한 뜀박질, ‘이제는 그만 누워 있고 싶어질 때까지 누워 있어 볼 것이었다. 내일은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175p) 일탈이 되어버린 휴식.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딱 한 걸음을 딛게 할 용기다. 이야기의 끝에서 주인공이 다시 세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처음과 달리 조금이라도 나아간다는 선택을 했을 때. 독자는 가슴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따스함을 느낀다.
잘못된 선택일까 두려워, 미래의 후회가 두려워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작가는 텍스트를 읽는 우리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후회 없는 결정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선의 선택은 있을 수 있다. 작가는 독자에게 용기 자체를 주지 않는다. 스스로 용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문득 눈앞의 모든 선택이 두려워졌다면, 너무 빨리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내 손을 놓쳐버렸다면, 어제와 다른 내가 될 수 있길 바란다면. 임선우가 텍스트로 그려낸 세계를 펼쳐보길 바란다. 그 속에서 당신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르고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을 답을.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걸음 디딜 용기의 원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