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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원망하기 보다 사람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저자/역자
정지아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2-09-02
독서시작일
2024년 06월 26일
독서종료일
2024년 06월 29일
서평작성자
김*진

서평내용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7쪽)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아버지는 어느 한순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런 아버지의 하나뿐인 딸인 주인공 아리는 장례식장 상주를 맡아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한 후, 뼛가루를 뿌리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와 관계있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을 만나고, 그들과 아버지 사이에서의 다양한 사연들을 통해 자신이 모르던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겠다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76쪽)

 아리는 평생을 빨치산의 딸로 살아왔다. 자신이 선택한 건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황과 모멸의 순간들을 견뎌야 했고, 모든 걸 감당하며 살아야 했다. 아리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꼬박 팔 년을 만난 선배가 있었다. 아버지는 빨갱이 집안이 큰일 할 사람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놓아주길 당부했다. 결혼을 준비하던 도중 상대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혼은 취소되었다. 이처럼 빨갱이의 딸로 살아가는 삶은 파란만장했고, 덤덤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오빠는 빨갱이 작은아버지를 둔 덕분에 육사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가 오빠 앞길을 막은 게 큰어머니는 세상 떠날 때까지 천추의 한이었다.”(77쪽)

 빨갱이 출신이라는 딱지는 온 가족을 괴롭힌다. 기회가 있어도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잡지 못하는 시대 상황이 잔인하기만 하다. 아버지 장례식에 조문하러 온 사촌오빠는 암으로 인해 많이 야윈 상태였다. 비단 암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가 빨갱이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견뎌야 했던 무수한 박탈감들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리라. 더구나 자기 아버지도 아닌 작은아버지의 출신 때문에 인생이 기구해져 버린 그의 삶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 상황에서 빨갱이의 딸인 아리는 사촌오빠에게 자신도 죄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어린 시절의 유대감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이념으로 인해 가족이 고통받는 상황을 보며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알았을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막내가 면당 위원장인 당신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다는 걸, 그 자랑이 당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걸, 그게 평생의 한이 되어 자랑이었던 형을 원수로 삼았다는 걸. 어쩐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130쪽)

 작은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단지 형을 자랑스럽게 여겨 그와 친분이 있다고 입을 열었던 것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시대를 잘못 타고나 가족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상황이 절망적이기만 하다.

 우리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다.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하는 시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며 지냈을까. 특히나 사상 검증이 심했던 시대에 태어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탄압받고 숨어 살아야 했을까.

 나도 모르게 아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나였어도 가족보다 이념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미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왜 나를 빨치산의 딸로 살아가게 했냐며 원망이 컸을 것이다. 이념을 갖는 것이 죄가 되고, 일가족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시대 탓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안타깝기만 하다.

 작가는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친다고 말한다. 실제로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라고 밝히는 그녀를 보면서 ‘이 책의 주인공인 아리가 마냥 가상의 인물만은 아니구나’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래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니었다. 작가가 작품에 붙였던 제목은 ‘이웃집 혁명 전사’였는데 출판사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제안했다. 나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제목을 지은 건지 궁금했다. 작가는 왜 ‘이웃집 혁명 전사’로 지으려고 했을까? 이웃집 혁명 전사는 아마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집이라 표현한 것은 우리 집이 아닌 이웃집의 내용이길 바랐던 마음이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 ‘현대사의 아픔’,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나는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인가’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떠올리기 힘든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생각에 잠겨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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