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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지만, 보려 하지 않는 것들 그래서 알지 못하는 것들.
저자/역자
정지아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2-09-02
독서시작일
2024년 06월 24일
독서종료일
2024년 07월 02일
서평작성자
차*홍

서평내용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p.32)

 

마주하고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마주하고 있는 것들을 방관하고 있지 않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조문하러 온 사람들과 아버지에 얽힌 일화를 딸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빨치산 출신으로 조문객 대부분이 빨치산 시절의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를 많이 풀고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전라도 사투리와 딸이 빨치산이라는 딱지로 고통받는 대목이 나온다. 작가 정지아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라남도 구례 출신이고, 실제로 빨치산의 딸로 작가 데뷔작이 『빨치산의 딸』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의 딸로 살아간 작가의 경험이 담긴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주하지만 보려 하지 않는 것들 그래서 알지 못하는 것들

 

‘아버지’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절대 굽히지 않는 인물이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었다. 식구 한해 먹거리가 달린 모내기에도 한 씨 사위가 쓰러졌다는 말에 택시부터 부르려 했다. 어머니가 만류했지만 “오죽흐면 글겄어!”라며 굽히지 않는다. 오죽하면은 아버지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의미를 생각해 보면 사정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뜻이지 않을까. ‘사정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사정을 헤아려보려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보려고 했다.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알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을 가지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반면, 딸은 마주한 아버지가 어떤 사정을 가졌는지 알려고 하지 않은 인물이다. 가족 사이인 아버지를 표면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기억했다. 진지한 태도, 빨치산, 사회주의자, 말만 번지르르한 인물 등으로 기억한다. 마주 보는 가족임에도 어떤 이유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박한 외모 평가로 인해 그 이후 화장하지 않았던, 빨치산의 딸이라는 딱지로 인해 결혼 상대를 잃었던 일화 등을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결국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탓에 방관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딸은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p.24~25)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모두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들여보려 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꿈꿔온 세상은 민중들이 행복하기를 꿈꿨다. 아버지가 말한 세상은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도 자연스럽게 꿈꾸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각각 사정이 분명히 있음에도 사정을 직접 알려 하지 않는다.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려 하지 않아 갈등으로 결국 갈등으로 나아간다. 소설에선 딸이 아버지의 타자를 통해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되듯이, 우리도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사정을,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되지만 직접 들여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남의 사정을 방관하고 있지 않나. 방관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탓해야 할까.

해방의 의미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로 살아간 작가의 경험이 담긴 소설인 동시에, 작가가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담긴 소설이다. 다음 대목은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반성을 알 수 있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걸 그랬다.” (p.268)

소설의 제목인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해방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각박한 세상에서 아버지가 죽음을 통해 해방됨을 뜻하기도 하지만, 방관만 하는 모습에서 해방할 방법을 몸소 보여준 일지가 아닌가 싶다. 해방 방법은 마주하는 것들을 보려 하고, 알려고 하는 것. 아버지가 사정을 인정하고 신념으로 행했던 행동들은 아버지의 조문 3일 동안 사람들을 모이게 했으며, 사상과 사람을 통합하는 방법을 몸소 알려주었다. “오죽하면”,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문자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믿은 덕분이다.

우리 모두 많은 것을 마주한다. 하지만 마주하는 것들을 다 알고 있다는 오만을 가지고 있다. 만약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이런 오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 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날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정지아-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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