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일색의 삼을 마감한 것이다.’라고, 건조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린 후 마치 평범한 이야기처럼,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풀어놓으며 첫 챕터가 진행된다.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이다. 그럼에도 덤덤한 서술은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화자는 아버지와 무슨 관계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절로 궁금증이 피어오르기 때문에.
죽음은 끝에 비유된다. 죽은 사람과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기존의 관계를 이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작가는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리를 통해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빨치산, 유물론자, 사회주의자와 같은 단어를 연상하던 아리는 장례식장에서의 3일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고상욱 씨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손님과 상주 간의 대화 속에는 격동하던 현대사가 문장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자칫하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작가는 친숙한 사투리와 유쾌하고도 씁쓸한 서술 방식을 사용해 독자가 큰 거부감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까 아버지, 나는 억울하다니까요! 그래봤자 아버지는 죽었고, 죽어서도 혁명가인 양 영정사진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움직일 리 없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마냥, 꼭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마냥 이야기한다. 잔잔히 미소 지을 수 있는 개그, 거칠지도 모르지만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투리, 만남과 만남 사이에 있는 온기, 그리고 우리를 마주 보는 작가의 문장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아리가 장례식장에 방문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그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은 마치 퍼즐과도 유사하다. 아버지라는 하나의 관념은 죽음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 파편을 간직하던 많은 사람이 아리와 만나고, 건네고, 대화로 맞추어 가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는 또다시 하나의 관념이 되어간다. 대화를 통해 만난 질긴 마음들이 아버지와 아리의 거리를 한층 좁혀놓는다.
우리는 과거를 들었을 뿐 겪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생생히 걸어 나올 듯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엿볼 수 있다. 아리와 아버지, 어머니, 주변 인물들의 갈등과 이해 사이에서 우리는 수업으로만 배웠던, 책으로만 들었던 역사 한 가운데에 서게 된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차별에 반대하는 구호가 문득 떠오른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짓던 시대에, 자신이 틀린 삶 한 가운데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던 아버지와 한 걸음씩 가까워지면서 그저 다를 뿐이었음을 깨닫는다.
격동의 현대사를 재치 있게 풀어낸 문장,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절로 페이지를 넘기는 손.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소설의 재미와 역사의 기록,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았다. 문득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피어오른다면,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작가를 믿고 해방일지를 넘겨보기 바란다. 아리와 함께 그의 아버지를 해방함과 동시에 당신이 잠시 기댈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