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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하산일지
저자/역자
정지아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2-09-02
독서시작일
2024년 05월 27일
독서종료일
2024년 05월 31일
서평작성자
김*오

서평내용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길이다. 주인공인 딸은 죽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빨갱이’ 아버지의 삶을 회고한다. 반내골이라 이름 붙은 산의 정상에는 아버지가 있다. 주인공과 함께 이 산의 정상에서부터 걸어 내려가다 보면 아버지와 관계 맺은 이들로 향한다. 꼬부랑길도 가보고 오솔길도 지나 보며 독자는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천천히 고조되는 감정의 고양감에 젖어 든다.

“그거사 니 사정이제.” 주인공 고아리는 정감 있는 전라도 사투리와 대비되는 세상 냉소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다. 이 묘한 매력은 독자로 하여금 책장을 붙들게 한다. 전라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신기할 수 있는, 그러나 본능적으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말씨는 중독적이다. 구수한 단어와 사투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글자들을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읽고 싶어지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빨치산과 빨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나왔는지 세어 볼 수나 있을까. 사회주의자로 지낸 4년으로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정의 당한다. 그런 아버지를 다루며 한국의 근대사가 빠질 수 없다. 마치 독자는 할아버지로부터 ‘나 때는’ 이야기를 듣는 손녀가 된 듯하다. 생소한 여순사건에 곁들여 직접 경험한 듯 시대상을 생생하게 구전으로 전해 주는 듯한 느낌은 분명 흔치 않은 장점이다.

작가는 한없이 가라앉을 수 있는 얘기를 코믹하게 표현하며 능수능란하게 완급조절을 한다. 덕분에 독자는 감정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다. 아버지의 전 동료인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는 어린 주인공뿐 아니라 얘기를 듣는 독자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 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질 않아.” 노동을 싫어하는 사회주의자의 등장은 웃음을 자아내며 센스 있는 방식으로 사람의 입체성을 보여 준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딸인 주인공만큼이나 아버지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은아버지를 만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강산이 몇 번이고 변할 동안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골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형제 관계는 예상과 다르다. 곪은 채 방치되는 줄 알았던 상처에는 이미 딱지가 앉아 있다. 어른이 된 딸이 보는 시선은 어릴 적의 시선과 합쳐지며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세상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냥 살면 그만임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도 깨달을 수 있다.

아버지의 딸인 주인공으로 향하는 이정표는 단연코 가장 긴 거리를 나타낸다. 부모-자식이라는, 대부분의 삶에서 진득하게 달라붙었을 관계의 복잡성은 빨갱이와 빨갱이의 딸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서로를 알지 못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조각 곁에 현실의 아버지라는 또 다른 조각을 꿰매며 아버지라는 조각보를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독자 역시 필연적으로 가족이라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빨갱이의 딸’이라 적힌 이정표를 지나면 하산에 가까워진다. 뜨거운 열로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던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물질인 유골을 불사르며 해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비로소 해방된 아버지를 보내며 스스로를 ‘빨갱이의 딸’에서 해방시킨다. 산길의 끝은 마을로 향한다. 마을의 입구에서 주인공과 우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슴으로 안는다. 결국 인정(人情)이다.

아버지를 해방시키는 과정 동안 독자는 주인공이 되어 함께 웃고 울며 인류애를 느낀다. “오죽했으면 글겄냐!”고 외치는 아버지는 현대인을 위로한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며 사람에 지친 사람을 사람으로 위로해 주는 기묘한 이야기는 하염없이 우리 마음에 남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마지막 장은 넘길 수 없는 공간이다. 정이 넘치는 장례식에서 슬프지만은 않은 눈물을 흘리며 육개장 한 그릇을 함께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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