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무거운 느낌을 주며 시작하는 이 책은 속된 말로 빨갱이인 아버지를 지닌 딸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간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다른 모습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내용을 담았다.
어릴 적의 주인공의 시선에서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 온 이후 사회주의자, 더 꼿꼿해진 유물론자로서 가족들에게 냉담하고 쌀쌀맞은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마을의 일이나 남의 집에는 자청한 머슴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지랖 넓고 타인에게는 따뜻한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보며 사상을 앞세워서 현실을 보지 않고 이상만을 좇고 철없는 사람이라고 아버지를 상상하며 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상하며 읽은 책의 초반 부분의 아버지는 독자들의 마음을 간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과하게 믿으며 여러 번 속고도 보증을 서는 모습이나 나갈 때를 놓친 방물장수에게 서슴없이 집을 내어주는 모습, 집을 내어줄 때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재우냐와 혹시 벼룩이 있을 줄 누가 아냐는 이유를 내세운 아내의 반대에 ‘자네 지리산에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자네가 바로 목숨을 걸었던 민중이여, 민중!‘라며 아내를 혼내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 방물 장수가 벼룩을 옮기고 서까래에 매달린 마늘 반접을 훔쳐 가더라도 오죽하면 그깟 것을 훔쳐가냐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방물장수 즉, 민중이 마늘 반접을 훔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꿨다. 이 모습을 보며 배신을 당해도 낙천적이고 현실을 보지 않는 회피주의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의 생각 또한 변화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의 담배 친구였으며 삶을 살아가는데 길잡이였다. 또 통일운동을 지지하며, 사회운동자들의 동지이자 다른 아이의 좋은 삼촌이, 어떨 때는 척척박사이기도 했던 아버지. 사람을 믿고 사람과 함께한 그 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버릇이던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도 하고 사람인 배신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읽으며 요즘 실수에 각박해진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나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고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다 실수를 할 것이다. 책 속의 아버지는 이를 알고 사람을 이해했으며 너그러웠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을 대부분의 우리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모여 대화할 때 그들이 느끼고 이해한 아버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그런 단편적인 모습이 모여 끝내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아버지가 사람들의 입과 말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삶의 끝은 어떻게 되든 죽음이고 나는 끝내 어떤 사람으로 기억이 되고 싶을까를 고민할 수 있다. 죽음 이후의 한 사람의 인생은 좋든 싫든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 당한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정의 될까 궁금해졌다. 책 속의 아버지는 비록 죽었지만 아버지를 알았던 사람들에게 다채롭게 정의되며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버지와 함께했던 골목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울 때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던 탓이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라는 부분을 보며 죽음에 닿아서야 빨치산이나 빨갱이라는 말에서 벗어난 아버지를 보며 묘했다
이 책은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개인과 한 사람에 대한 여러 사람의 정의가 모여 한 사람을 구성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며 어려운 내용이 없어 책이 쉽게 읽혀 가볍게 읽기 시작해서 죽음과 삶, 사람에 대해서 사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