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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저자/역자
임선우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2-03-25
독서시작일
2024년 05월 20일
독서종료일
2024년 05월 29일
서평작성자
서*윤

서평내용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을까? 반대로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란 서로 완전히 같아지는 것일까. 책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고 난 후 들었던 생각들이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책 <유령의 마음으로>는 임선우 작가의 소설집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임선우 작가는 1995년생으로 201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 작가다. 책에는 8편의 단편소설, 작가의 말, 황예인 문학평론가의 평론글과 박솔뫼 소설가의 추천글이 함께 담겨 있다. 소설 8편의 주인공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일상에 끼어든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일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환상은 일상이 되며

 이 책은 환상적인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다만, 환상을 일상으로 가져올 뿐이다. 책에 등장한 주인공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환상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다. 첫 번째 단편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유령의 마음으로>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유령에 놀란다. 그렇지만 유령의 존재를 금세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유령은 ‘나’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며 공명한다. ‘나’가 드러내지 못하고 꾹꾹 담아두던 감정까지 표출해 주는 유령은 ‘나’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를 전해 준다. 유령과의 교류를 계기로, ‘나’는 식물인간이 되어 2년 동안 놓지 못하고 있던 남자친구 ‘정수’를 떠나보내 줄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단편 <빛이 나지 않아요>에서는 돌연 등장한 변종 해파리로 인해 변화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람을 홀리는 빛을 내어 닿은 사람을 자신과 같은 해파리로 변신시키는 변종 해파리는 세상에 혼란을 가져온다. 그러나 혼란도 잠시, ‘나’를 포함한 세상은 곧 변종 해파리의 등장에 적응한다. ‘나’는 해파리로 변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변신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난 고객 ‘김지선’ 씨가 해파리로 변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겪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속내까지 완전히 해파리로 변하지 못하는 김지선 씨와 며칠을 지내며 해파리가 내뿜는 빛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와 김지선 씨 둘 다 빛을 뿜는 해파리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해파리가 되기엔 너무나 인간다웠던 김지선 씨는 결국 완전한 해파리가 되지 못한다.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내내 놓지 않고 있던 음악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그제야 꿈을 좇게 된 나는 김지선 씨가 전해 준 보이지 않는 빛을 통해 해파리의 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위로하려 하지 않았을 때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되어,

 이 이야기들의 매력적인 점은 그들이 전하는 위로와 공감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오로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대로 왠지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독특한 서사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이해받고 공감한다. 이 모든 일들이 현실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데도 세상 어딘가에 그들이 존재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독자들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 힘이 있는 책이다.

 그들이 전하는 위로와 공감에서 특별한 점은, 나를 보듬거나 쓰다듬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들었지?’, ‘나는 널 이해해’ 하는 섣부른 말은 하지 않는다. 나와 전혀 다를 것 같은 타인의 삶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그들과 공명하며 세상의 순리를 깨닫게 되거나 내가 미련하게 끌어안고 있던 무언가를 맘 편히 놓아 버리게 해준다. 이러한 맥락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첫 번째 단편 <유령의 마음으로>의 ‘나’가 안고 있던 남자친구 ‘정수’에 대한 마음, 네 번째 단편 <낯선 밤에 우리는>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각자의 무언가를 놓아 버리며 드디어 함께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 나(희애)와 금옥의 이야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스스로 따뜻해진 마음.

 이 이야기들이 특히나 와닿는 이유는, 따뜻함을 전하고 느끼는 그 마음은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기 때문이겠다. 타인이 전해 준 것도 아니며, 내가 스스로 따뜻해진 마음. 이것과 관련하여 작가의 말 속에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고빌라트론을 구한 것이 고빌라트론이었다는 사실이, 뜨거운 생각이 마침내 근사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좋았다. (261)”

 8편의 소설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에서 마주친 이 문장이 책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이 책에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되기도 했다.

 

변함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 책은 우리를 살게 해준다. 죽은 마음을 되살리거나 죽고 싶은 마음을 없애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정말 ‘살게’ 해 준다. 일곱 번째 단편 <알래스카는 아니지만>에는 아끼던 고양이 성철이와 병철이를 잃은 후 복수를 다짐하며 사는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철이와 병철이를 잃었을 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세상이 변함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이었다. (223)”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통찰이 인상 깊다. 나에게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기든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며, 그것은 잔인하지만 반대로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단편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팡>에는 죽은 후 유령이 되어 100시간을 보내게 되는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청소기에 갇혀 있던 연습생 유령과 마지막 순간 첫차를 보기 위해 역에 찾아온 역무원 유령도 등장한다. 역무원 유령은 용기가 필요해서 첫차를 보러 왔다고 말한다.

그는 생전에도 마음이 무너질 때면 첫차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조용하던 플랫폼에 약속처럼, 마법처럼, 때로는 기적처럼 첫차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고. (255)”

역무원 유령은 함께 첫차를 보고 난 후 작은 불꽃이 되어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다음 같은 것은 없고 이것이 끝이자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불꽃이 예쁘다는 시답지 않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255)”

 일곱 번째 단편 <알래스카는 아니지만>에서 느낄 수 있는 위로와 다르지만 비슷하다.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결국 우리 모두에겐 끝이라는 게 존재한다.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새벽녘 들어오는 첫차처럼 당연하지만, 기적 같은 순간이 오고 그것이 우리에게 살아갈 의지를 준다. 우리에게 다음 같은 것은 없고 끝만 있을지언정 우리가 존재했던 순간은 아름다운 불꽃과도 같다. 시간의 흐름과 같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고, 시간의 틈에서 틔울 수 있는 각자의 불꽃을 스스로, 그리고 함께 고민한다. 임선우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다. 이 책을 덮은 이후에도 내 삶을 씩씩하게 마주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낀다.

 

각자의 불꽃을 안고.

 누리호 발사 당시, 한창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기사 제목이 있다.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라는 제목이다. 누리호 발사가 이 넓은 우주 속에서 잠깐 빛나는 빛일지라도 그것이 헛되지 않은 노력임을 잘 드러내는 제목이라며 호평을 받았다. 책 <유령의 마음으로>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변함없는 세상 속에서 개개인의 삶이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결코 허무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따뜻한 마음으로 꼿꼿이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이다. 끝을 향해 달려간다고 그사이의 일들이 절대 허무한 것은 아님을, 그 속에서 피울 수 있는 불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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