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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현재에 감사함과 반성을
저자/역자
김학선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0-03-02
독서시작일
2023년 09월 06일
독서종료일
2023년 09월 08일
서평작성자
황*준

서평내용

 그때와 다르게 자유롭게 흘러가는 나의 24시간

 책의 제목 『24시간 시대의 탄생』만을 보았을 때는 시간 정치, 시간 역사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24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나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시간에 지배되고 있진 않은지 등 별생각을 다 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을 마친 후 놀고 싶으면 늦게까지 놀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집을 간다. 집 가서 쉴 때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는 것, 뉴스를 보는 것도 나의 자유이고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나는 것, 늦게 자서 일찍 일어나는 것 등 다 나의 자유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1980년대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거나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활용하거나 만들지 못하고 국가에 지배되고 국가에 의해 조종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서평을 쓰기 전에, 책을 읽은 후의 전체적인 느낌은 일단 굉장히 어려웠다. 항상 이야기식으로 전개되는 내용의 책을 읽었었기 때문에 이해하기에도 조금 힘들었고 단순 설명의 나열이 계속되고 내용 자체도 어렵다 보니 읽는 데 조금 힘들었지만, 관심을 그다지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시간 정치 즉, 그들에게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과거에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과거의 시간에 대한 궁금증은 일부 해소되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고 공감되는 부분도 다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 부분들에 대해 차근차근 말하고자 한다.

 왜 19080년대였는가? : 안타깝고 억압적이었던 그 시대

 작가는 많은 시대 중에서도 1980년대에 주목했다. 책 표지에도 1980년대의 시간 정치라고 작게 적혀있는데 그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우선 책을 읽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정부 즉, 신군부는 국민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던 것일까?’였다. 신군부 세력은 새로운 시간 기획을 통해서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동원하고자 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국민의 일상 시간은 국가의 시간 자원으로 개념화되어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동원됨으로써 국내적으로는 국민을 재결집하고 동원하는 자원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외적으로는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국가 간 경쟁을 강화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는 책을 읽으며 신군부가 국민을 국민으로서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설명을 조금만 덧붙이자면, 1980년의 과외 금지, 1982년의 야간통행금지 해제, 1987의 서머 타임제, 1986년의 아시안 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신군부 정권은 이 4가지 정책들을 통해 국민의 일상 시간의 배열과 구조를 재구성함으로써 사회변화를 꾀했다. 과외 금지는 교육 개혁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지배 구조의 재편을 위해 국민 생활을 통제해야 했기 때문이고, 야간통행 금지 해제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국민 의식을 개혁하기 위함이었다. 즉, 겉으로는 개방과 자율을 표방하면서도 억압과 통제를 지속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서머 타임제로 인해서 국민의 생활 시간에 변화가 일어났고 생체 리듬에 영향을 미쳐 당시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꼈다. 이렇게 정부는 국민의 시간이 국가의 시간이고 국민은 통치해야 하는 대상, 국민의 일상 시간은 통제하면서 정책을 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아시안 게임과 같은 큰 규모의 행사를 하니까 이렇게까지 하면서라도 국가의 발전력을 높이고 다른 나라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은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스포츠 미디어 이벤트이고 이러한 대행사들을 통해서 대내외에 대한민국의 단합을 과시하고 국가 정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의 이미지, 국가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국가를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국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마다 생체 리듬도 다르고 생활 패턴도 다 다르기 마련인데, 그것들을 억지로 통일시키려고 하고 통제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더 억압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군사 정부였기에 즉,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니었기에 국민들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유일하게 스스로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까지 억압해서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 대행사 같은 것들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마저 빼앗으면서까지 통제하고 정치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최대한 감정적으로 읽으려고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책의 감상을 느끼려고 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도저히 참아지지 않았다.

 나는 시간 정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신군부 정권 때 억압과 통제만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마저 통제하고 정치 수단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아직 나는 신군부 세력 때의 정권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상태여서 책을 읽으며 그냥 화가 났다. 그들이 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고 했는지, 다른 나라에게 잘 보이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아픈 역사라고 생각되어서 더 감정이 고조되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내가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부분이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을 구조화했던 텔레비전

 다음으로 공감되었던 부분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말이 반복되고 내용 자체도 많이 어려워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 유일하게 공감이 되고 현재 나의 생활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던 한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은 바로 “텔레비전은 편성을 통해 시청자의 사적 시간에 간섭할 수 있으며,”이다. 텔레비전이 사적 시간에 간섭할 수 있는 이유는 텔레비전 방송이 프로그램 단독의 시간성이 아니라 편성을 통해 연속성과 규칙적을 가지는데, 그 흐름이 일상의 리듬과 시간을 재조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방금 말한 문장에 대해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보자면, 나는 평소에 야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도 좋아하지만,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다른 일을 하다가도, 평일이든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모든 날을 불문하고 야구 경기를 할 시간이 다가오거나 야구를 할 시간이 딱 되면, 그냥 의무처럼, 마치 무조건 해야 하는 일처럼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야구를 본다.

 아마 텔레비전에 야구가 편성되지 않고 그냥 결과만 뜬다면 나는 굳이 나의 사적 시간을 텔레비전에 쏟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 야구가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텔레비전에 편성되면서 나는 몇 년 동안 나의 시간을 야구 경기 편성에 따라 텔레비전에 사용하고 있다. 야구 경기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도 정해진 시간에 회차별로 편성되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든다.

 이처럼 텔레비전은 근대적 일상을 구조화하는 시간 매체로써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부는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국민의 일상 시간에 변화를 주려고 했고 텔레비전과 관련한 정책들을 펼쳤다. 텔레비전을 이용하여서 한 대표적인 활동은 공영 방송 체제에서 방송사가 국익을 우선하고 건전한 사회 풍토를 조성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명분 하에서, 신군부 정권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국민의 일상 시간을 재조직할 창구로 이용한 것이다.

 당시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률이 90%에 육박했고 방송 기술도 발전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텔레비전 방송을 사회 통제와 동원에 활용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이러한 조건을 이용하여 당시 정부는 텔레비전 방송에 선량한 시민과 건강한 가정, 건전한 사회 윤리의 제고를 목표로 하면서, 신군부 정권의 정책을 홍보하고 국민 화합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즉, 텔레비전을 적극적으로 정권 홍보와 정권 유지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국민의 일상 생활에 변동을 주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한 가지만 말하자면, 당시 야간 통행 금지 제도가 있었을 때였는데, 대학 입시를 위해 “가정 고교 방송”이라는 것을 심야 시간에 편성하였다. 당시 고등학생이거나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일상생활에는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안그래도 고등학생들은 공부하느라 피곤할 텐데 그 프로그램 하나 때문에 기상 시간과 수면 시간, 학습 시간 전체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아침 정규 방송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고 제일 비중이 높았던 뉴스를 통해서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도 했고 아침 방송에 시청자들을 창출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을 아침에 일어나게 하여 뉴스를 보게 했다.

 앞서 말했던 텔레비전과 야구에 관해서 덧붙여 말해보자면, 작가는 “텔레비전에서의 프로 야구 중계는 새로운 일상성을 획득하며 국민의 여가 활동과 여가 시간을 변화시킨 한편, 당시 야구팬들로 하여금 서로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서로 공감대를 나누는 경험을 하도록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굉장히 공감이 간다. 나에게도 프로 야구를 시청하는 것이 어느새 나의 여가 생활, 취미 생활로 자리 잡았고 내가 응원하는 구단이 지고 이길 때마다 팬들끼리 환호하고 슬퍼하는 등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나누고 팬들끼리 단합이 된 느낌도 많이 받았었기 때문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의 한일전 같은 경우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다 같이 응원하고 단합력을 보이며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즉, 야구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텔레비전을 통해서 야구를 시청하는 시간은 같은 구단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고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를 통해 대한민국이 하나임을 느끼고 다짐하는 시간일 것이고 어떻게 보면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1980년대뿐만 아니라 현재에서도 텔레비전은 사회적 시간을 일상적 시간과 공간에 침투시켜 사적 시간을 규율할 뿐만 아니라, 그 관계에서 새로운 사회적 시간, 사회적 조직,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연결성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그때의 시대적 공감과 단합력이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들의 노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현재의 자유로운 사소한 시간에 감사하며

 책을 읽고 나서 국민들이 1980년대에 시간에서의 주권을 가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고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노력의 과정에 대해서 크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냥 1980년 당대 시대상을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점은 신군부 세력이 시간을 이용해서 국민들을 통제하고 정치하려고 했었다. 더불어 이후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개최를 이유로 시간을 이용해서 국민들을 또 한 번 통제했으나 방식은 이전과 달랐었다. 정부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신경 쓰느라 국민을 야간통금 해제, 자율화, 여행 및 유학 자유화 등의 정치를 하며 은근히 국민들을 이용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국민들이 시간에서의 주권이 무엇인지, 시간에서의 주권을 왜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목을 알려준 것 같았다. 즉, 정부가 추구한 현상과는 다른, 의도하지 않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 같아 신기하고 재밌었다.

 또한, 이때까지 학교에서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야간 통행 금지,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 등에 대해서 배웠을 때 단순히 “그냥 그 시대에는 그랬었다.”의 느낌으로만 배웠었기 때문에 제도 및 문화적인 현상에 깊이 파악하지 못했고 이면에 대해서도 깊게 알지 못했었다. 어떻게 보면, 입시라는 목적 때문에 그 이면까지 파악하려고 하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런 사소한 제도, 사소한 현상 하나하나까지 파고들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서두에서 말했듯이, 지금의 나는 시간을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나 스스로가 통제한다. 그러나 1980년대 때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시간들을 그때는 당연하게 누릴 수 없었고 오히려 통제되었고 이용당했다.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 앞에서 말했듯이 정부가 추구한 방향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우리에게 시간에서의 주체를 가질 수 있게 해준 과거에 감사하고 지금의 이러한 자유롭고 자율적인 시대에 감사하다고 느낀다. 또한, 평소 공부를 하기 싫을 때 빈둥빈둥 놀려고 하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거나 무의미하게 보낸 경우가 많았었는데, 그러한 시간들도 반성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에게 여러모로 고마움을 느꼈고 이 감정을 유지한 채 서평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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