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형화된 기존의 ‘개인’을 넘어
많은 사람들은 ‘이봉창’을 떠올릴 때, 그의 의거 직전 사진을 떠올린다.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거사를 앞두고도 의연하게, 죽음을 초월한 듯이 환히 웃는 그 사진. 하지만, 이봉창이 수류탄을 들고 찍은 그 사진은 합성 사진이다. 저자의 문제 제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의 인식 속 이봉창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천황 암살을 계획했던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과연 이봉창은 독립운동가로서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독립운동을 제외한 ‘개인’ 이봉창과 그의 정체성에는 주목하지 못했다. 그가 독립운동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독립운동을 선택했는지 말이다. 식민지 청년이었지만 자신을 ‘신일본인’이라 생각했고, 근대 문화를 누리던 모던보이 이봉창. 그랬던 그가 갑자기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보기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독자에게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동시에 독립운동의 영역에서 벗어난 개인 ‘이봉창’의 실체를 사실에 기반하여 생생한 다큐멘터리 픽션 형식으로 몰입감 있게 제시했다.
2. ‘다양성’에 기초한 ‘개인’의 발견
책 전반을 살폈을 때, 이봉창은 갑작스레 독립운동 노선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봉창이 독립운동을 선택한 이면에는 식민지 청년이었던 그가 겪었던 부당한 차별이 내포되어 있다. 저자는 이봉창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만 부각하기보다 그가 왜 그 선택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입체적으로 인물을 그려냈다. 이를 위해, 이봉창이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당하는 모습, 그래서 조선인임을 자책하는 모습, 차별을 타개하고자 일본인 혹은 조선인으로 살고자 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진 이봉창은 생활고로 인해 민족이나 국가의 독립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용산역 조차계의 시용부로 취직한다. 노력으로 빠르게 승진한 이봉창은 연결수가 되었지만, 몇 년 동안 승진하지 못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기에, 일본인들을 부러워하고 이들에게 인정받으려던 이봉창은 허무함을 느낀다. 결국, 차별 대우 및 빚 청산을 이유로 사직한 그는 일본 내지에 차별 대우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행을 결심한다. 이렇게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봉창은 노동자로 생활하던 당시만 해도 일본 정부에 큰 불만을 품고 있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차별에 대해 거부감과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인 민족과 독립을 생각할 만큼의 의식은 형성하지 못했다. 이처럼 독립운동하기 전의 이봉창은 수많은 식민지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일본에서도 숙식 공간과 일자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조선인이라 차별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나약한 나라에서 태어난 자신을 자책했다. 이후, 취직한 이봉창은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차별이 현실이었음에도 자신을 천황의 백성이라 내면화하고 있었다. 나아가 이봉창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 그 나라의 역사와 왕을 모를 수 없다고 생각해 천황 즉위식 구경을 가려 한다. 그에게 있어 국민인 자신이 속한 나라는 일본, 그 나라의 왕은 천황이었다. 그러나, 검문에서 한글과 한문이 섞인 편지를 발견한 경찰이 그를 유치장에 가뒀고, 그 시간 동안 이봉창은 원망과 자책, 분노를 느낀다. 이 경험은 그가 처음으로 독립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죄 없는 자신이 갇힌 이유를 보호해 줄 나라의 부재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봉창은 그렇게 민족을 발견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봉창은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히 ‘일본인’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그의 ‘국왕’은 일본 천황이었다. 독립운동을 택하기 전 이봉창의 정체성은 ‘천황의 백성’이자 ‘식민지 노동자’였지만,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과 시야의 폭이 넓어졌다. 이제 이봉창은 부당한 대우의 원인을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에서 찾는 것을 넘어, 본인을 지켜줄 나라가 없다는 것에서 발견하려 했다. 이는 명료하고 구체적인 발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별에 감정적으로 대응해왔던 그가 본질적인 문제에까지 접근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도 잠시,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던 이봉창은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졌다. 그래서 이봉창은 더욱 완벽하게 일본인 행세를 했다. 이러한 본인의 행동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다시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했다. 수많은 내적 갈등을 거쳐 자신이 완전한 일본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봉창은 본명을 밝힌 뒤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상하이 일자리에 관한 소식을 들은 이봉창은 조선인으로 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떠나게 된다. 여기서 이봉창이 우리가 만든 정형화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는 민족과 독립을 발견했다고 해서 즉시 본인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이봉창은 끊임없이, 때로는 치열하게 ‘자신’을 두고 숙고했다. 이 점이 ‘개인’ 이봉창을 드러내는 단서다. 강인하고 의연한 면모를 가진 ‘독립운동가’ 이봉창도 존재하겠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개인’ 이봉창도 명백히 존재했다. 정체성과 민족을 두고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는 우리에게 현실적이고 친밀하게 다가온다.
3. 영원히 남을 가치, 독립을 향한 한 걸음
한편, 저자는 이봉창이 상하이로 떠났을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임시정부는 재정적, 성과 측면에서 매우 부실한 상황이었고, 이에 김구는 의열 투쟁을 구상하고 있었다. 취직을 위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은 그의 기대와 달리 상하이에서도 조선인으로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조선 독립에 인생을 바치고자 했다. 그의 단호한 결심을 확인한 김구는 이봉창과 거사를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거사 준비를 마친 김구는 이봉창을 만나 그와 함께 한인애국단의 선서식을 거행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며칠 뒤, 이봉창은 다시 김구를 만나 거사 시기와 장소 선택에 대해 의논했고,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사진을 찍었다.
도쿄에 도착한 이봉창은 기다리던 자금을 전달받고, 1월 8일에 계획을 실행하려 했다. 그전에 미리 현장을 확인했고, 거사 하루 전에는 긴장을 풀고 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거사를 단행한 이봉창은 성공을 확신했지만, 수류탄의 위력이 예상보다 약했고, 이봉창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다. 그는 두 번의 공판에서 다 사형 판결을 받았고, 극비리에 사형되었다.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김구와 임시정부가 재기에 극적으로 성공하여 독립운동의 열기를 다시 일으켰다.
일본 사회를 경악하게 만든 이봉창의 의거.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천황을 죽이려던 식민지 청년의 행동은 일본 식민 정책의 실패를 명백히 폭로하는 것이었다. 철저히 차별과 분리로 이뤄지는 식민 정책이었지만, 표면상으로는 조선과 일본이 하나임을 내세웠으므로 모순이 내재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 방침에 순응할 수 없었던 이봉창과 같은 일반인들이 이 방침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듯, 식민지 청년으로서 여러 차별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이봉창은 조선인의 국가를 되찾고자 했고, 민족의 대표라는 자각 하에 적극적으로 의거에 참여했다.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여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한 이봉창. 그의 선택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고민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봉창은 나름대로 근대를 경험하기도 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경험했다. 차별의 축적은 그에게 인식 전환의 계기로 작용했으며, 이 시점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민족, 독립을 두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 책에 나타난 이봉창의 의식 흐름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완벽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끝내는 조선인으로 살기 위해. 그는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영원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다.
4. 또 다른 만남, ‘개인’ 이봉창
이 책은 지금까지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이봉창의 내면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이제 독립운동 영역 너머의 ‘개인’ 이봉창을 만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저자는 정해진 틀 안에서 안주하지 않았고, 역사학의 비판적 기능을 적절히 활용해 그 경계 밖 개인과 다양성의 힘에 주목했다. 그랬기에, 개인의 일상과 선택을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은 일제 식민지 시기의 역사상을 개인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재구성한 성공적인 시도이다.
덧붙여, 서술과 구성 측면에서도 이 책의 장점이 드러난다.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는 문제 제기, 사실에 기반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술을 다큐멘터리 픽션 형식으로 풀어낸 방식은 글에 몰입도를 높였고, 생동감을 주었다. 이 서술 형태는 이봉창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으므로, 그의 이야기를 독자가 수용할 만한 개연성도 충분히 부여했다. 함께 첨부된 사진 자료도 그 당시의 사건과 역사상을 그려볼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또한, 독자층의 범위가 넓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전공자이든, 교양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든 이 책을 읽는다면 인식의 전환과 확대를 경험할 것이다. 동시에, 식민지 시기라는 역사적 상황은 아니기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청년 취업 문제에서 공감할 부분을 찾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보편적인 일상 대신 일부의 사실만을 성역화했던 역사와의 작별. 이는 독립운동의 영역을 극대화해서 일제 식민지 시기를 설명하는 ‘전통’이 유효하지 않음을 뜻한다. 저자는 개인과 일상, 다양성에 집중한 의미 있는 시도를 단행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역사가 극단적으로 다가오기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을 통해 본 식민지 청년 노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봉창. 독자들은 그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미 그와 만나고 있다.
영원의 가치를 지향했던 그가 좌절과 상실을 딛고서, 더없이 행복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