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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성웅이 나오지 않았으면......
도서명
저자/역자
김훈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2-01-05
독서시작일
2023년 12월 01일
독서종료일
2023년 12월 03일
서평작성자
이*찬

서평내용

‘칼의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는 군 시절이었다. 처음 겪는 낯선 훈련소, 수 많은 군중들 속에서 나는 삶의 방향도, 쉴 곳도 잃은 채, 양과 같이 지시대로 따를 뿐이었다. 마음이 공허하고 원인 모를 울적함이 가득한 나날이었다. 그러던 와중 진중문고라는 작은 간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장군님의 백의종군 시절부터 죽음까지를 소설화한 작품이었다. 이 책이라면 불안하고 힘든 군생활에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라와 수 많은 사람을 짊어지고 영웅적 승리를 하신 분에 비하면 나의 군생활은 별 게 아닐 것이었다. 게다가 학창시절 피상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업적만 배웠지, 그 과정에서 일어난 내밀한 배경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생생한 그 순간을 느껴보고 싶은 호기심도 일었다. 그렇게 집어든 책을 주말 간에 완전히 독파했다.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위안이었다. 나라를 구했지만 오히려 임금은 나를 죽이려 한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전함과 그 동안 같이 싸웠던 대부분의 수군이 칠천량 해전으로 사실상 전멸해버린다. 그리고 나를 죽이려던 왕은 이제 다시 백의종군하여 다시 전장으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복귀하는 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상을 지킬 수 없다. 죄인의 몸으로 백의종군을 해야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엄청난 압박감과 책임감 그리고 분노와 슬픔으로 미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일주일 내내 그리운 어머니의 꿈을 꾸면서도 본인이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신다. 그리고 한국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끄신다. 하지만 얼마 뒤 명량대첩의 보복으로 일본군은 이순신 장군의 본가가 있는 충남 아산을 침공하였고 그로 인해 막내 아들이 전사하고 만다. 그 소식을 들은 날 장군은 이렇게 일기에 쓰신다.

[나도 모르게 낙담하여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하도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못하실 수가 있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게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것은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인가.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보인다. 슬프다! 내 작은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말도 안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는 점이다. 그저 밤에 홀로 바다를 거닐으며, 그 무거운 책임과 슬픔 그리고 불안을 곱씹을 뿐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위안이 아니라 경이로움이 몰려왔다. 장군은 진정 태산 같은 사람이구나 감탄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처연한 심정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위기 속에서 나라와 사람들을 살린 성웅임에 틀림 없지만, 인간 이순신의 삶은 너무나도 큰 비애 아닌가.

누군가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과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거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희생해야지만 성웅이 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성웅이 나오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한 사람의 헌신만이 필요한 사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순신 장군의 삶을 바라보며 위안 받고 감탄하며 경애하지만, 더 이상 이순신 장군이 필요한 사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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