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이 쓴 글은 그의 삶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대의 여성이 흔히 받았던 차별과 부조리함에 목소리를 내었으며, 성차별이 옳지 않음을 주장했다.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노력한 그는 늘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자신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말했고, 스스로 당당하였기에 주변의 외면에도 기죽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혜석이 주장하는 바가 상식을 벗어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는 점점 몰락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이 책은 나혜석의 글을 통해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단순히 페미니즘에만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과 더불어 여성이 받았던 대우와 차별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한다.
여성으로 사는 삶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당대의 여성은 누군가의 딸,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산 나혜석의 글에는 살면서 겪어왔던 부조리한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많다. 특히나 소설 「경희」에서는 아버지로부터 결혼을 재촉받았던 경험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나혜석이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에게 모든 학비 지원을 끊었다고 한다. 그가 아버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소설의 대화를 통해 당시 나혜석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지 예측할 수 있다.
“계집애라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대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
소설에는 위와 같은 문장 외에도 계집애가 배워서 무엇을 하냐느니, 배울 만큼 배웠으면 혼인을 해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시대적으로 여성이 교육을 받고 유학을 가는 것이 흔치 않았던 시절 나혜석이 들어야 했을 차별적인 발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전유물로 존재해왔고, 자신만을 위해 살지 못했던 사실을 나혜석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을 경희라는 인물에 투영해 여성도 사내와 다를 것 없이 교육이 필요하며,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여성은 사람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위의 문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여성은 사람이기 전에 여자로 존재했고, 여자는 그에 따라 요구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교육보단 혼인이 우선이 되어야 했으며, 그 혼인도 집안의 이익을 위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씁쓸하게 느껴진다.
나혜석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다 주장한 것은 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왜 나혜석의 주장은 당시 여성들에게 많은 동의를 얻지 못했으며, 그 이후에도 여성의 권리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여성과 사랑
나혜석은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지만, 희대의 스캔들로 더 이름을 날리게 된다. 당시에는 이혼한다는 자체가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혼에 더해, 바람을 피워서 이혼당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쉬웠으며,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나혜석은 다른 이를 사랑하였지만, 남편과의 이혼은 원치 않았다. 본인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으며,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혜석은 자신의 이야기가 끝없이 커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고, 왜곡되어가는 사실을 바로 잡고자 「이혼 고백장」을 발표한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이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이혼 고백장」은 단순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해명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만 글을 발표한 것은 아니었다. 위의 글처럼 자신이 받았던 억압과 부조리에 대해 말하였다. 남성에게만 관대한 성문화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정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나혜석은 일찍이 연인과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 결혼, 이혼에 대해 관대했다. 그랬기에 그가 바라보는 이성의 관계, 부부 사이에 있는 문제점을 잘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나혜석이 던지는 비판에는 수많은 이성 관계와 모른 척 넘어가야 했던 여성들의 지난날들과 변화해온 사랑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유난히 특별하게 요구되는 사랑이 하나 있는 것 같다. 바로 모성애이다. 나혜석은 연인과의 사랑을 글로써 다루기도 하였지만, 모성애에 대해서도 다뤘다. 그러나 아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 가지는 혼란스러움을 적었다. 모(母)된 감상기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며 겪은 심경의 변화, 임신에 대한 불만, 아이를 향한 낯섦이 잘 드러난다.
‘뱃속에서는 어느덧 무엇이 움직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몸이 오싹해지고,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지는 소리가 완연히 탕 하는 것 같이 들려왔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모든 사람의 말은 나를 저주하는 것 같고 바람에 날려 들리는 웃음소리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위의 문장을 통해 나혜석이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알 수 있다. 그 이외에도 남편을 원망하는 글, 아이가 자신의 잠을 빼앗아 악마 같다는 글을 남긴다. 하지만 이런 글을 썼다고 하여 나혜석이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혜석은 아이만큼 자기 일도 소중했었다. 임신하고 난 뒤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모성애 또한 여성에게 강요돼 온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과연 하나 기르고 둘 기르는 동안 지금까지의 애인에게서나 친구에게서 맛보지 못하는 애정을 느끼게 되었나이다.
구미 만유하고 온 후로는 자식에게 대한 이상이 서 있게 되었나이다.
아이들의 개성이 눈에 뜨이고 그들의 앞길을 지도할 자신이 생겼었나이다.
위의 글처럼 시간이 지난 뒤 쓴 「이혼 고백장」에서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나혜석은 아이를 이유 없이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이기 이전에 사람이었고, 겪어보지 못한 사랑의 형태에 관한 당황스러움이었을 뿐이었다. 나혜석이 느낀 바는 아직 현대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여성 대다수가 아이를 낳고 모성애가 생기지 않아 혼란스러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강요돼 온 모성애에 익숙해진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어머니라는 정체성에서 혼돈을 겪는 것이라는 것을 나혜석의 글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껏 소비되어왔던 모성애에 대해 목멜 필요가 없다. 아이를 가진다고 하여 모성애가 당연하게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지금껏 향유되어 온 모성애라는 틀을 깨기 위해 어떤 노력과 시도가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여성이기 전에 사람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
나혜석은 글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성의 이야기를 글로 남김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글로 드러냄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다. 또한, 자신이 비판받고 외면받아야 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부장적 사회에 부조리함을 느끼고 여성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힌 사람.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나혜석이 페미니스트였다.’라는 사실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대의 가치관, 여성의 지위 등을 함께 살피며 당시에 왜 페미니즘이 주목을 받지 못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본다.
근대의 여성은 어떤 존재였을까.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야 했을 그 시대의 여성의 삶을 엿보며 현대의 여성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게 된다. 또한, 나혜석이 남긴 글을 보며 현대에 소비되고 있는 페미니즘이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혜석은 남성과 여성이 사람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았던 상황에 질문을 던졌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녀가 모두 동등한 사회, 이것이 페미니즘이 이끌어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앞으로도 이와 관련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