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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료, 편지
저자/역자
정용욱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1-02-25
독서시작일
2023년 11월 20일
독서종료일
2023년 11월 26일
서평작성자
강*정

서평내용

. 사료로 새로이 태어난 편지

편지가 사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렇기에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도 역시 ‘편지가 어떻게 사료가 돼?’였다. 일반적으로 ‘편지’라는 것은 지배층보다는 일반인이, 집단보다는 개인과 개인 간에 사용되는 매개체이기에, 당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로 기능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가 서론에 적은 한 문장이 이러한 생각을 단숨에 바꾸어놓았다. 작가는 편지에 대해 ‘당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표현으로 자신보다 큰 목소리나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향해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시선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공문서나 특정 집단에서 의견을 모아 나온 문서만이 사료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완전히 깨졌다. 편지란 것이 당대의 ‘개인’, 개인의 상황 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사용되는 사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는 편지들이나 간단히 주고받는 쪽지, 인터넷 기사에 달리는 댓글 등도 미래에 생활사나 특정 사건에 대한 개인의 반응을 보여주는 사료로 사용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1장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난 뒤, 일반인들에게는 해방의 기쁨보다 생활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변무련이라는 조선인 어린이는 맥아더 장군에게 돈과 가진 것을 모두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창규 역시 ‘1인당 1,000엔까지 지참할 수 있다’는 지침에 대해, 맥아더 장군에게 ‘우리 조선 민족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귀국 후 예금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게 하여 주심을 원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고국에서의 생활 기반 문제를 직시하고,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우치 하나코가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었다. 이 여자는 ‘천황제가 불가하다면 당장이라도 식량을 미국이 증대 배급해 주는 조건하에 폐지해도 대중은 환호로 그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천황제 국가의 ‘신민’이 천황제 폐지를 언급하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신탁통치와 좌우 합작 운동, 미 대통령 특사 방한과 관련한 편지들도 흥미롭게 읽었으나, 1장에 나타난 내용보다는 파격적이지 못했다. 그리하여 1장의 내용을 우선으로 하여, 중심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 편지가 보여주는 민간의 실상

변무련, 이창규, 오우치 하나코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그것은 구분할 필요조차도 없다. 조선인들은 해방과 동시에 사회, 경제적 혼란을 겪었고,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난 이후 일본인 역시 생활고를 겪었다. 외국에 있던 이들은 귀국할 때 지참할 수 있는 돈이 제한되기도 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다면, 고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식량을 얻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찬찬히 훑어본다면, 오우치 하나코가 맥아더에게 식량 배급 증대를 조건으로 걸어 천황제 폐지를 언급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 싶다.

1장을 통해 가장 실감했던 부분은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일반인들의 입장이다. 그들은 먹고사는 문제, 그들을 먹여 살릴 존재가 중요했다. 그런데 그 ‘존재’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일본은 천황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였다. 대동아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천황제는 정해진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천황은 존재했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신민’이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필자는, 얼마 전 대동아전쟁 종결 조서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인 중에서는 옥음방송을 들으며 대일본제국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울부짖는 이도 있었다.’ 그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신이었고, 일본 그 자체였으며, 천황제의 붕괴란 대일본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가진 상황에서 오우치 하나코의 편지를 읽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 ‘겨우 자신이 당장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상황 때문에 그들의 천황제를 포기하겠다고?’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동아전쟁 시기의 일본인들은 제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우고, 천황을 지키고, 국가 전체를 총동원시키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결국 제국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은 ‘천황의 군대’ 정도였나? 당장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은 천황제에 미련이 없었을까? 이와 관련된 질문들을 꼬리를 이어 계속 떠올리다 보면, 연이어 두 번째 의문이 떠오른다.

두 번째 의문은 바로 ‘조선인이라면 어떠했을까?’이다. 당시 한반도 내의 좌파와 우파는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결국 독립된 통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는 했겠다만, 만약 식량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는 전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군정이든, 신탁통치든, 우파정부든, 좌파정부든 상관하지 않았을까? 당시 쌀 문제는 심각했으니 말이다. 귀환했던 조선인들은 생활의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서 조선으로 돌아온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일본인들은 편지를 통해 일본 패전 직후의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조선인들에게 전가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인들은 생활권 옹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쌀값이 급등할 때마다 미군정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식량 위기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쌀 문제가 해결된다면, 조선인들은 무조건적으로 지지를 보냈으리라.

두 가지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려 보았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황을 신적 존재로 인식하고, 대우해 왔던 그들은 ‘무슨 신이 이런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신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전쟁에서도 패배하고, 당장 백성들을 보살피지도 못하는데, 자신에게 어떠한 이익도 주지 못하는 존재를 떠받들어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처음에는 실망, 점차 쌓이는 실망에 이어 불신이 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들 역시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어떤 지배 형태든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각이다. 하나의 개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일반인들이 정치 지배자들처럼 무슨 창대한 꿈이 있겠는가. 나와 나의 가족, 친구들만 잘 먹고, 잘 산다면 하늘에 해가 떠 있든, 그림자가 드리우든 크게 알 바가 아닐 것이다.

. 편지를 이루는 요소들

이번에는 책을 쭉 읽으며 느꼈던 부분을 편지의 ‘요소’로 묶어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책에 실려 있는 여러 편지들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정한 양식이 갖춰져 있어, 한눈에 정갈하게 들어왔고, 또 다른 하나는 약간의 투박함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이 편지들의 공통점을 찾다 보니 눈에 들어온 것은 편지를 작성한 주체였다.

전자는 이 글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일반인’이 아니라 그들의 위에 존재하는 ‘지배층’의 편지였다. 미군정의 인물이 보낸 편지들은 일정한 양식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편지들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세로로 줄이 있는 편지지에 작성되었다. 또한, 타자기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쓰인 편지는 그 글씨체가 정갈하기까지 했다. 문체 역시 자신의 요구사항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는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듯했다. 일반인의 편지이더라도 보고서 작성을 위해 미군정의 손안에 들어온 것들은 내용에는 변함이 없더라도 미군정의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후자인 ‘일반인’의 편지는 달랐다. 편지라고는 하나 텅 빈 흰 종이에 글을 주르륵 쓴 것이었다. 사실 ‘글을 썼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요구사항을 나열했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간혹 양식이 있는 편지지에 쓴다고 하더라도, 그 필체는 그리 정갈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배층과 달리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할 때도 강력한 표현을 썼다. 이는 예의 없는 말투를 사용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굳이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높임말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요구는 강력했다. 오우치 하나코의 편지와 일본 여고생의 편지, 정문자의 편지가 그러했다.

정문자의 편지는 더욱이나 특이했다. 정문자는 미국 대통령 특사였던 앨버트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진정서를 보냈는데, 웨드마이어를 부를 때 느낌표를 연이어 3개 찍음으로써 그의 절박함을 잘 보여주었다. 편지의 양식, 필체, 문체가 아닌 문장부호로 편지 작성자의 감정과 호소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장부호로 감정이 호소 된 편지는 정문자의 편지뿐이라 더 살펴볼 수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고, 하나의 사료만으로 일반화하기에는 섣부른 감도 있지만, 일반인들 혹은 당시 편지를 이용하던 이들이 문자부호를 통해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꽤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역시 그들이 편지를 이용하는 방법이었을 테니 말이다.

. 이제 나에게 편지란

글의 초입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편지를 사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게 사료가 아니면 뭐겠나.’였다. 개인이 처한 상황, 그로 인해 바라는바, 감정적 호소 등이 포함된 개인의 편지가 하나씩 모이면, 개인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집단을 보여주고, 당대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가 된다. 물론 저자의 말을 빌려, ‘편지는 작성 의도를 간직한 만큼 발신자의 속내와 편지 내용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겠지만 말이다. 점차 손으로 직접 쓰는 글들이 사라지고, 키보드에 의존하여 작성되는 글들이 많아지는 요즘이지만, 아직까지도 편지는 존재한다. 편지는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손으로 ‘직접’ 작성되었다는 이유로 다른 기록보다 더 감정을 담고 있다. 보다 진정성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가 남기는 모든 글들이 미래의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편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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