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쓰기

>>
서평쓰기
>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저자/역자
유시민
출판사명
돌베개
출판년도
2023-06-23
독서시작일
2023년 08월 30일
독서종료일
2023년 08월 31일
서평작성자
임*겸

서평내용

0. 소감

반은 공감할 수 있으나, 반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소양에 동시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같지만, ‘수학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는 나와 저자가 달랐기 때문이다.

‘문과’와 ‘이과’. 재미있는 구분이자 쉬운 구분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 역시 그러한가? 아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것일 테고, 별다를 게 없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구분이리라.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이 되던가.

저자는 본인을 문과적인 남자라고 지칭했다. 그러니까 ‘이과’적인 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점은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이다. 부제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가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유의미한 구획이 나에게는 무의미한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러한 의미의 간극은 순간순간 마음을 미어지게 하고, 또 때론… 견디게 한다. 내가 잊고 있던 간극을 다시금 떠올린다. 나의 선택을 돌아보게 된다. 내 마음의 현상적 근원지를 슬며시 밝혀주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은 맑스를 좋아했다. 맑스는 헤겔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헤겔은 ‘정반합’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게 맑스의 자본론에서의 사회경제철학에 영향을 미쳤다고. 교수님은 철학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철학 부문에 관심을 갖고 질문했을 때 교수님이 ‘정말 싫어할 때만 짓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게 철학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인데…”라고 운을 떼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럴 수야 있었지만, 학파의 아버지 급 사상가, 그 사상가의 손자 제자가 학파의 사상(철학) 공부하는 걸 싫어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랬다면 교수님의 학문적 명성도 성과도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 다만, 내가 이해한 것은 적어도 교수님에게 있어서 사회학을 공부한다는 것과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극명히 다른 일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겹치는 구간이 있더라도.

교수님은 어느 지점을 지나쳐 갔던 걸까. 어떤 구분 점을 밟고, 또 어떤 구획을 비껴가고 있을까.

1.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뇌신경과학을 좋아하고 통계학을 좋아하고 컴퓨터를 좋아하고 사회학을 좋아하며, 철학을 좋아한다. 아. 요즘은 그 물리학이라는 것들에도 조금 관심이 간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고 조금 반했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전문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겠지만.

스토아학파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는 신경을 끄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통계학은 가능성을 따져보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수식에 적용하는 상황과 조건들에 따라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통제할 수 있는 일’로 바꿀 수 있었다. 화학 성분에 따라 물질의 색깔이 변하는 실험이 생각난다. 사회학도 그렇다. ‘이래서 이런 거야’ 하고 설명되던 일이 ‘그런데 저래서 저럴 수도 있긴 했어’ 하며 설명된다. 애석하게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 점은 찾고자 할 수록 오히려 흐려지기만 했다.

나는 어떤 것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야 하나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계속 커져만 가고, 해보고 싶은 것들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네가 뭘 한다고 되겠어. 그래봐야…’하는 시선과 말도 잦아졌다. 그놈의 조언이라는 방패 뒤에서. 대한민국이 총기 소지 가능 국가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 내게 있어 혹자들이 뱉어대는 독 묻은 칼날은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다다랐다. 총량과 빈도는 비슷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나는 꽤 독이 퍼진 상태였으므로.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본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질과 환경적 측면에서 천문학이나 수리학 등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저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책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저 질문의 시점에 “헉!”했으리라 생각한다. “예끼 이노마 정신 차려!” 하는 소리에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얼얼한 뒤통수를 잡고 질문을 수정했다. ‘기질과 환경적인 측면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로. 질문을 생각하면서 책을 죽 읽다 보니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사잇길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 

.

이 답에 대해, 나는 사잇길 멀리 놓인 별을 좇기로 했다. 이미 내 눈에 비췄고, 나는 그 별에 꽂혔으니 뭐 별수 있겠는가. 벽을 부숴서라도 별을 잡아내고 말아야지. 날아드는 독묻은 창들은 내가 벽을 부수고 들어가면 갈수록 더 이상 나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손에 거머쥐는 일일 테니.

\’0\’도 \’1\’도 아닌 길 위, 소수점 뒤의 꼬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전체 메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