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러브 좀비 : \’칼\’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 세상에 놓여진듯이 괜스레 제 목이 서리고, 종잇장이 칼날처럼 세밀했다.
1. 초대 – 기시감과 이물감, 그리고 가시
초대를 펴내었을 때,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사각사각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읽어냈다. 분명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기 전에 책을 덮을 나인데,
“왜 덮으려 하니, 이제 시작이거든.”
그렇게 칵테일, 러브, 좀비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내 것으로 만들어버려야겠다고 다짐한 유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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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년간 목에 걸려있던 가시와 이물감은 ‘기시감’이라고. 답이 떠오를 때 뱉을 수 없는 수많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
그 나이대 어린이들은 뉴런을 공유하는게 틀림없다. 일곱 살인 내가 마실 사이다에 소주를 태워놓고는 아니라며 발뺌하던 어른들. 확 들이켜서 아주 큰일 내봐?라는 생각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처음 맛보는 알코올의 떫은 맛에 구역질하고 있지만, 끝까지 바닥을 보여야 했던 나와 오빠만이 그 자리에서 가장 큰 구경거리와 재미를 선사했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배울 때 느리게 이해한다면 이 일화를 들려주며 핑계 대고 싶어.
채원이 또한 싫어하는 회를 접하면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자신을 보고 고통스럽게 후회할 어른들을 상상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채원의 목에 응어리진 가시는 수년간 빠지지 않았다. 응어리진 이물감, 그 가시는 내면의 소리가 아닐까. 내시경으로도 엑스레이도 가시 모양의 형체가 발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살면서 우리는 가끔 스스로 정답을 알곤 한다. 그럼에도 주변에 확인받고자 하는 것은 용기를 얻기 위함이고 제3자가 내려주는 객관적인 근거라는 것에 마음을 기대는 것이다. 채원이도 어쩌면 정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응어리들까지 뱉어내고 싶어 하는 욕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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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칵테일, 러브, 좀비 – 살아있는 것이 지옥이라면 우린 모두 좀비일 것이다.
가끔 반복적인 일상의 껍데기를 과도로 예쁘게 도려내어 새것만 남기고 싶다면 욕심일까? 하지만 그것도 색이 변하기 마련이겠지. 칵테일, 러브, 좀비의 ‘아빠’처럼 나는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도 스스로의 약속을 이어나간다.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고-부자들의 습관이라고 해서 따라 하기 시작한-, 물 한 잔을 마신 후 아침 요가를 시작한다. 요가를 끝내곤 바로 샤워로 몸을 깨우고 아침 식사를 한다. 샤워를 하면서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예정대로 아침 루틴이 끝나면 계획을 세운다. 오늘은 집에 있는 원두가 다 떨어졌으니 잠을 깨울 핑계로 커피 내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 좋은 카페를 골라 창가에 앉아서는 며칠 전에 본 ‘좀비버스-좀비 세계에서 살아남는 예능’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에 물론 좀비가 나타날 리 없겠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살아있음이 지옥이겠지라며 하늘을 쳐다보곤 노트북을 켜고 할 일을 시작했다. ‘나도 아빠랑 다를 게 없네.’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하고 있던 상상에 답을 내려줄 책이 타이밍 좋게 나타났다. 그것이 칵테일, 러브, 좀비.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에 물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을 때마다 현실적으로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답했다. 다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아니, 너까지 살아야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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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 굉장한 몰입감으로 수천 번은 찔린 것처럼 아리다.
“벌어질 일들은 벌어져.”
매분 매초마다 지금이 가장 나은 상황이라고 되뇌며 보내곤 한다. 그럼에도 후회를 남기는 이유는 내가 하지 않은 다른 선택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속삭이기 때문이었다. 내면의 속삭임은 달콤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나 자신이 보내오는 유혹으로 또 다른 우울을 가져온다. 이렇게 무언가를 다 안다는 듯 말하는 나지만, 항상 모르는 자는 말이 쉽다. 세 번의 기회에서 세 번 모두를 쓴 이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그렇게 사랑을 위해 몸 바칠 수 있는 대담함에 압도된다. 겁쟁이처럼 느껴진 나는 ‘벌어질 일들은 벌어진다.’며 노력할 시도조차 안 하고 도망치고 있던 건 아닌지. 때로는 직시함으로써 얻는 것들이 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