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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면
저자/역자
장강명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5-08-08
독서시작일
2023년 07월 18일
독서종료일
2023년 07월 19일
서평작성자
이*정

서평내용

구조가 되게 특이하다. 소설의 내용이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있다. 소설에서 남자가 여자의 출판사로 보낸 원고인 [우주 알 이야기]를 여자가 실수로 떨어뜨려 뒤섞인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내용이 뒤죽박죽인 것과 같이 소설 속의 남자도 우주 알을 받아들인 후부터는 앞뒤가 없는 뒤죽박죽인 시간 속에서 산다. 소설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메타 소설같다고 느꼈는데, 그런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 또 있다. 남자는 고등학생 때 [그믐]이라는 원고를 교지에 냈으며 이름 중간에 \’강\’이 들어가고, 이 소설의 제목 역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며 작가의 이름은 장강명이다.

남자가 어떤 아이를 찔러 죽인 과거를 말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그 뒤로도 장면이 훅훅 바뀌고, 조금 더 읽고 나서야 남자가 학교폭력 피해자이고, 그 죽은 아이가 가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제목처럼 각 인물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다 다르다. 남자가 학교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는 남자의 시점에서 잘 묘사되지 않는다. 남자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거나, 학교폭력 가해자가 급식을 버리고 핥아먹으라고 했다거나 그런 대사들로 제법 심각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반면 가해자의 엄마인 아주머니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억을 바꾼다. 조금 짓궂은 아들이었다느니 또래 남자애들 간의 작은 다툼이었다느니 아들과 본인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며 모든 것이 남자의 책임이라며 남자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힌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자가 죄책감인지 속죄인지 담담히 죽음을 수용하는 장면에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아주머니의 말에 사실이 조금이나마 있었나 하는 혼란을 일으키게 한다. 벗어날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왜 딱 그렇게 죽기를 바랐을까. 경험해 보았을 많은 결말 중에 그게 최선이었을까. 정확한 진실은 말해주지 않고 남자의 거짓말로 마무리되어 끝까지 찝찝함을 남게 하는 조금은 불친절한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남자가 우주 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란 거대한 미술관을 정해진 방향, 정해진 속도로 걷는 단체관람객과 같은데 우주알은 그 단체관람객 무리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자유티켓 같은 거라고. 그런데 어차피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어떤 사건이 꼭 일어나게 결정되어 있다면 무슨 소용일까. 남자는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라고. 실제로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는 중이라고. 결국 어떻게 해서든 정해진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면 패턴을 아는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마지막엔 우주 알이 아주머니에게 들어갔는데 아주머니는 어떤 삶을 살지 궁금하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면 처음에 봤을 때는 담담해 보였던 남자가 절실하고 애틋해 보이기도 한다. 여자를 꼭 이런 식으로 만나러 와야 했다고 하는 부분에서나 여자에게 계속해서 마지막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부분에서도 말이다. 이런 숨겨진 감정 때문에 다시 읽을 때는 또 다른 감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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