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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저 너머에
저자/역자
올더스 헉슬리
출판사명
소담출판사
출판년도
2015-06-12
독서시작일
2023년 05월 01일
독서종료일
2023년 05월 02일
서평작성자
배*오

서평내용

<멋진 신세계>가 창작된 계기로는 H.G. 웰스의 <신을 닮은 인간>의 장난스런 비유로 시작했다가, 주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자 작가의 목적에서 점점 벗어나는 전개가 된다. 나는 이것을 보고 처음 인문학을 접하는 독자가 나도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가 갑자기 전혀 모르는 부분이 (사실상 대다수였다.) 책에 대한 배경지식을 현재 논란이 있기야 있지만 유튜브에서나 방송에서 최근까지 가장 잘 나가던 방송인이었던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을 보고 대강 스토리를 감 잡게 되고 이것 참 재밌고 신박한 소설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11월 3일 어제 저녁부터 시작해서 답사를 간다고 늦게 일어날 것 같아서 밤새 책을 탐독해서 4일 오늘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게 되었다, 내가 평소 책을 평소 읽을 때는 책의 전체 내용을 다 완독하고 그 의미까지 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주위 사람들보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고 장점이 있을 때도 있지만 없는 경우도 많다. 이 책도 해설 방송을 늦게 봐서 4장인가부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이해하기 어렵고 왜 하필 고전 중에 이 책이 추천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책은 1932년판본과 (내가 읽은 책은 최신 방송에 나온) 1946년 판으로 조금의 차이가 있다. 기본적인 뼈대는 같다고 볼 수 있는데 1932년 판은 내가 구하지 않아서 대략적으로 간단히 소개하면 내가 알아본 바로는 문명이 최고조로 발달한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풍자소설이라 할 수 있다. 1946년 판은 오랜 생각 후에 헉슬 리가 인간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이것이 소설 속에 나타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잠재력이 우리 인간 사회의 과학 기술이 얼마 만큼 발전했는가. 또 그 과학 기술 속 우리 인간의 삶은 어디까지 가는가? 그 인간들이 소설 속에서 지금도 실현되고 있고 실현 가능성 있는 즉 개발 가능성과 잠재력이 존재하는 엄청난 물질 적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 소마라는 대표적으로 성적 기분을 느끼게 해주거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마약이나 술, 담배나 3D, 4D를 넘어서 5D라고 표현해야 되는 영상 영화와의 3, 4 차원적 성적 교감, 또 난잡한 이성교제나 문란한 성관계, 본인 의사와 관계 없이 태어나고 복제되는 평등이라지만 불평등이 존재하는 이런 현실을 묘사하면서 실제 내 주관적인 생각이라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 물론 그 당시에도 매일 매일 세상이 바뀌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인류 사회의 과학 기술이 그대로 발전한다면 그 이상이 될지 아니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 지도자가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미래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풍자하는 풍자소설이다. 대체로 1932년 판은 이런 구도일 것이지만 약간의 차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된 모습의 차이일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비행기를 만든 것은 사람들이 아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경우도 있다. 헬리곱터가 언제 개발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헬리곱터가 실용화된 것이 1939년이다. 따라서 1932년 작에는 등장했는지 예측인지 알 수 없지만 나왔다면 나는 작가의 창의력이나 독창성의 선견지명에 놀랐다. 또 하나는 원자력 같은 원자탄에 대한 예기가 안 나왔다는 것인데, 내가 구한 책인 1946년 판에는 설명이 나온다. 그 때랑 1932년에는 역사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자면 먼저 1914년 열강들간의 제국주의 쟁탈전인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뒤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 지불과 군비 축소 등 막대한 피해를 입고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들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배상금 지불 문제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대공황까지 찾아와 말 그대로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때 히틀러가 나타났다. 히틀러는 특유의 언변으로 나치당의 독일 제 3제국을 세우게 된다. 히틀러는 문제의 원인을 유대인 탓, 나머지 일부 사회적 병자들이 문제가 있고 오직 독일 국민과 같은 아리아인이 위대하다는 주장을 편다. 이탈리아에서도 파쇼당의 무솔리니가 집권하고 일본도 만주 사변으로 대륙 침탈을 강행하면서 이 3나라가 추축국을 형성하게 된다. 그에 반해 제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인 영국, 프랑스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고 패전국의 식민지 대표적으로 구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를 차지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대공황에서는 블록 경제로 탈출구를 찾게 된다. 미국은 후반에 전쟁에 끼어들어 승전국이 되는데 나름대로 경제가 좋아지고 광란의 20년대를 보내고 이 때 작품 속 신으로 추앙받는 포드 사의 자동차 모델 T가 보급되면서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자동차 (뿐만이 아닌 다른 물품들 또한) 를 대량생산하여 보급하게 된다. 이 대량 생산에서 작가가 복제 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차용한 것 같다. 어쨌든 미국은 호황기를 누리지만 주식 시장이 폭락하면서 대공황을 겪는다. 이 때 루즈벨트가 등장하여 대공황을 극복하고 때마침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다시 원자탄 예기로 돌아가서 원래 원자폭탄은 독일에서 개발하려 했지만 미국에서 먼저 개발하고 일본에 투하하면서 전쟁은 종결된다.

작가는 머리글에서 15년 전보다 유토피아 사회가 눈앞에 다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용과학을 분산화하고 이용하지 않으면 두 가지 선택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하나는 오늘날에도 러시아에서 전쟁 중에 원자폭탄을 쓰겠다는 국가가 나오는 판국에 중국이나 북한 그 외에도 예상치 못한 여러 변수가 있고 이런 국가들이 원자탄을 쓰는 것과 나머지 한 가지 선택은 능률성과 안전에 따라 유토피아라는 복지 독재사회로 발전하는 독재 체제다. 그러면서 인간은 선택을 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나머지 하나의 선택권인 복지 독재사회가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가 떠오르는데 작가가 이 책을 다시 쓴 1946년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막 소련 대 미국의 냉전 체제가 시작되는 차례였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가상의 세계정부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나 1932년에도 소련이 있었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각지에서 공산당과 사회주의 같은 정당이 생기고 막 싹이 틀려고 할 때 쯤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산아를 통제하고 있다거나 계급이 낮은 사람들도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국가가 소련과 같은 국가였다. 그 뒤 작가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사회에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인 메카시즘의 강풍도 불었고 내 생각에 소련 말고 유력한 국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도 그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그냥 작가가 이름을 막 생각해서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일부 등장인물 이름에서 작가가 왜 역사적 유명인들의 이름을 붙였는지 생각했다. 주인공인 버나드 마르크스의 ‘마르크스’, 세계의 지도자 중 서유럽을 담당하는 무스타파 몬드가 진짜 서양권에서 쓰는지 알 수 없지만 터키의 케말 무스타파가 떠올랐고, 주변인물인 사로지니 엥글스, 모르가나 로스차일드, 허버트 바쿠닌 등 로스차일드는 경제적으로 유대계 대부호이자 오늘날에도 명성이 자자한 집안이고 바쿠닌은 일본의 무사와 같은 사무라이가 떠오르는데 러시아의 유명한 혁명가이자 무정부주의자 마르크스와 엥겔스( 엥겔스의 성별은 파악이 안 안 되었는데) 성경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이 읽히는 고전 유명한 자본론을 쓴 저자이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여 공산당이 결성되고 소련이 탄생하는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미친 장본인들이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가난한 대다수의 대중 즉 민중들 (무산 계급) 이 권력을 잡는 국가. 인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아주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내가 볼 때는 자본주의 하에서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시대를 풍자한 소설이라지만 당시에 혁명하면 떠오르는 러시아를 의식을 많이 한 것 같다. 1984와 같은 미래 사회를 그린 소설이 또 하나 있지만 내 생각에 주인공 이름을 붙인 것은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동물농장이 떠오른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제일 꼭대기 마르크스는 알파 계급 중에도 플러스에 속하는데 좋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들이 눈에 띈다. 다른 주인공인 헬름흘츠 왓슨은 체격이 건장하고 뚜렷한 인상에, 강인하고 힘찬 매력이 눈에 띄는 철저한 알파 플러스에 속한다고 비서가 입에 마르도록 칭찬한다거나 유능하다고 상관들이 내린 평가를 보면 엄친아이자 완벽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버나드는 자신의 지위에 우월성을 느끼지 않고 신경질적이고 교만한 모습을 델타 마이너스 심부름꾼에 보이는 면에서 성격이 괘팍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체형도 작았다. 이런 점이 버나드를 혼자라는 정신적인 과잉 상태 괴리의 원인을 느끼게 하였고, 그에 반해 헬름흘츠는 자기가 너무 잘났다고 생각해서 혼자라고 의식하게 만들었다. 알파, 베타 밑에 사람들에게 외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는 점과 버나드가 만들어질 때 감마인 줄 알고 실수로 알코울을 넣어 현재와 같이 되었다는 점에서 버나드가 실제로 사회주의 혁명하면 강인한 인상을 주고 그 인상의 창시자인 마르크스도 대단해 보이는데 소설에서는 상대해주는 여자도 없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모습이 눈에 띈다. 나는 위에서 예기했듯이 공산주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엥겔스는 사모임에서 유흥을 즐기는 면모) 중에서도 마르크스의 안 좋은 면모를 작가가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다루는 시간은 1932년 이후로 600년 뒤다. 그 때의 과학기술은 최고도로 발달된 그 시간 속 사람들에게는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세계다. 그런데 이런 세계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먼저 성관계를 하지 않고 아기가 생겨서 커가는 과정만 봐도 그렇다. 이곳에서는 성관계가 불법으로 되어 있는데 딱 한 명 린다라는 예외적 여성이 있었다. 그 예기는 뒤로 미루고 인간에겐 기본적으로 태어나자마자 인간으로서의 평등이 주어지는 권리가 있다. 아기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이 그냥 태어나면 끝이다. 자연적으로 번식이 힘들어서 내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낳기 힘들다면 소설이 아닌 현실에도 인위적이 아닌 인공 수정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계급이 있고 그 계급이 말만 평등하지 그 안에서도 차등 대우가 존재한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으로 나누는데 엡실론만 봐도 포스터가 앱실론은 인간의 지능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머지 감마, 델타도 차등 대우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을 받는데 나는 소설 후반부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존이 왜 충격을 받고 미쳐서 날뛰는지 이해가 갔다. 위에서 예외적인 여성으로 린다를 예기했는데 문명권이 아닌 뉴멕시코에 있는 야만인 구역에 존과 같이 살고 있었다. 린다는 처음에 문명권인 타처에서 온 여성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린다가 왜 야만인 구역에 살게 되었는지 나온다. 린다는 토마킨 국장과 같이 야만인 구역에 갔었고 사고로 린다는 실종 된다. 린다는 타처에서 안 되는 임신을 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존을 발견한 버나드는 그 둘을 문명 사회에 데려오게 된다. 그 뒤 린다와 토마킨의 관계가 밝혀지고 과장은 자리에서 물러난다. 린다는 걸신 들린 듯 소마를 흡입하면서 일상을 보내는데 이런 난잡한 생활이 린다를 죽게 만들었다. 그 전에 이미 린다는 문명권하고 멀어져서 노화도 되고 살도 찌고 볼품 없게 변했지만 대마초와 같은 마약 흡입 같이 끊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괜히 죽음을 자처한 결과였다. 병실에 있는 린다 곁에 쌍둥이들이 이상한 사람보듯이 빙 둘러서서 죽음 앞에 흔들리는 존의 정신 상태를 꼬마들은 당연한 문화이자 관습인 듯 지켜보았고 이에 항의하는 존에게 간호사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교육과정의 일부고 존이 화난 상황이 더 이해가 안 간다는 태도로 따진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만약 존이 그들과 같은 계급 내지 앱실론 플러스나 그들과 같은 델타였다면 그 간호사나 아이들이 억울한 상황이 되었을까? 존이 야만인 사회에서 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육은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 건전하고 지극히 상식적으로 받았고 행동도 교양인에 가까운 사람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존도 우리처럼 소설 속 사회가 이해 안 되는 것은 똑같았을 것이다. 존이 먼저 타처인 멋진 신세계라 이름 붙인 문명권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은 사실이다. 자꾸 수작을 부리는 레니나에게 화가 나고 그 뒤에 엄마의 죽음을 겪은 뒤 방황하고 소마를 원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납득이 안 가는 존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는 이것이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된 인격적 대우를 해주지 않은 신세계 속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명백한 차별이자 내가 보기에 여기서 주입식 교육의 피해이자 폐단이 나타났다고 본다. 존은 엄마가 델타였고 본인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되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래도 그도 사람이다. 그런 존을 장난감 대하듯 대하는 신세계 속 사람들의 잘못 또한 있다고 본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 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늘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그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주입받으면서 살고 있다. 이런 경쟁이 최우선인 우리 사회가 멋진 신세계 속 아이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마치 그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존은 소마를 뿌리는 난동을 부린 뒤 경찰관에 의해 진압당한다. 그 뒤 버나드, 왓슨과 같이 무스타파 몬드에게 불려가 대화를 하게 되는데 결말을 보았을 때 좋지가 않았다. 왓슨은 포클렌드로 납득하고 가고 버나드는 섬으로 가야 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울상을 짓는다. 그 둘은 놔두고 몬드와 대화한 존은 문명 사회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그랬다. 육체적 쾌락도 원하지 않는다 했다. 신세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할 때 존은 안락함을 원하지 않고 신과 시와 자유, 죄악을 받을 권리인 불행해질 권리를 원한다 하였다. 몬드는 야만인처럼 살길 원한다니 길을 터주었다. 그 뒤 존은 등대에서 원시인처럼 살게 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문명을 거부하고 레니나의 사랑을 거부한 존이 왜 레니나를 다시 찾느냐?이다. 그래서 안 당해도 될 채찍질을 왜 당했냐?이다. 그냥 깔끔히 정리했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런 점이 존의 문명과 야만 사이의 모순처럼 보이고 내가 생각한 이 소설의 결말하고 다른 점이 아쉬웠다. 나는 존이 과학기술의 최고 문명 사회와는 다른 진정한 인간애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였고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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