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둔한 민달팽이나 민들레조차 그것들을 들여다볼 만큼 호기심이 충분한 인간에게는 영적, 도덕적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p. 46
이 책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저자 룰루 밀러? 혼돈에 저항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 단 50페이지 남짓을 읽고서는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이 책이 어떤 것을 전하려고 하는지도 짐작조차 못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데이비드가 아가시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페니키스 섬에 도착한 상태다. 아가시는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교육자들을 맞이하였으며, 교육자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가짐이길 바라고 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p. 45
아가시는 신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봄으로써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이야말로 신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라고 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아가시는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는 \’인간\’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의, 인생의 말로를 보여줌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p. 201
물고기를 보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던 소년 데이비드 스타 조던, 심연에 빠진 룰루 밀러에게 용기가 되었던 그는 이제 없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밀고 나가던 그는 자신의 일에 방해되는 것들은 서슴없이 제거해 나갔다. 교묘하게 살인 사건을 사고로 은폐하고 그것에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을 아둔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하였으며 인간 사이에 우월성과 열등성을 나누어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인간들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불임 수술을 가행하는 법률을 추진했다. 죽을 때 이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고 현대에도 그의 영향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그가 가지고 있던 \”낙천성의 방패\”. 그것은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가 생각한 것이 옳은지 의심하게 만들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자연속에는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까지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계층 구조인 사다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의 눈에 인류가 퇴화되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이 들어왔을 때, 그는 열등한 사람들을 불임화 하는 것이 인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주장했다. 수 많은 근거들이 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데이비드에게는 진실보다 더욱 더 중요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훨씬 더 심오한 무엇, 그것은 바다와 별들과 현기증 나는 그의 인생을 휘몰아가는, 소용돌이치는 늪을 깔끔하고 빛나는 질서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그 계층구조를 놓아버리는 것은 삶의 회오리바람을 풀어놓는 일, 딱정벌레와 매와 박테리아와 상어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주변, 그의 위에서 빙빙 돌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p. 207
며칠 전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인물을 보며 \’목적있는 삶\’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 목적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너지더라도 일어나서 걷게 한다. 또 \”낙천성의 방패\”, \”파괴되지 않는 것\”을 곱씹어보며 나에대해 반성할 수 있었고 책 인물처럼 살고자 했다. 나한테는 위인전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인을 소개하고 기리는 책. 삶에 교훈을 주는 책.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책이 아니다. 나의 상상력을 한참이나 초과한 책에 멍 해졌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그의 무기들은 인간을 우월종 열등종으로 나누어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이 행해지게 했다. 놀라운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그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큰 영향력을 주었다. 이 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목적있는 삶\’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말로는 늘 아름답지는 않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나는 \’방향\’과 \’의심\’을 삶의 길에 추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적의 유무 이전에 내 목적의 방향에 대해 설정하는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이후에는 꾸준히 자신의 길을 의심해야 한다. \”낙천성의 방패\”는 이때에는 필요없다. 의심과 의심을 거듭하며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