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책을 완독하고, 이 도서의 핵심을 무엇일까 생각했다.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기기만과 낙천성의 방패를 휘두르며 저지른 광기 어린 일들?
\’어류\’라는 생물학적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아마도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필자가 전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멸망 \’일 것이다.
필자는 과거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해왔지만,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우울과 비극적인 충동을 떠올리며 혼돈의 유년기를 보낸다. 그 시작은 습지의 광활함을 보며 인생의 의미를 궁금해하던 어린 필자에게 아버지가 건넨 한 마디였다.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도 없고 신도 없으며,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 좋을 대로 살라고. 그것이 필자 아버지의 생각이었고, 그의 인생관이었다. 하지만 이 말들은 필자에게 역효과를 가져왔다. 필자는 늘 존재 이유를 찾았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세계를 버티는 힘을 잃고 있었다.
우울하고 지친 유년기를 보낸 필자는 시간이 흘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필자는 자신의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 실수로 인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그녀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또다시 우울과 혼돈의 나락에 빠져 자책하고 괴로워하던 그는, 삶의 혼돈에 항복하기를 거부했던 사람, 미국의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해 흥미를 느끼게 되고 그의 일생을 훑어나간다.
하지만 저자는 그 어류학자의 일생을 알아가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그의 스승이었던 루이 아가시, <종의 기원>의 저자인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 행한 끔찍한 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착각, 자기기만, 낙천성을 방패 삼아 저지른 잔인하고 광기 어린 일들은 필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독살과 은폐, 유전적 정화라는 그릇된 정의 아래 만들어낸 \’우생학\’이라는 학문, 이를 내세워 실시한 이른바 \’부적합성\’의 특성들을 가진 사람들을 없애 버리는 말살 정책인 \’강제 불임화\’를 합법화한 일. 그리고 이런 무자비한 인간들의 동상이 아직도 자랑스럽게 미국 대학교에 전시가 되어 있다는 사실 등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마주한다.
우상으로 삼고자 연구하기 시작한 한 분류학자의 일생 속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사실들은 이 책이 처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그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발견해 나가던 필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실시했던 강제 불임화의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어릴 적 이유도 없이 끌려가 감옥과 같은 수용소에 갇혀 생활했고, 한 명은 나팔관을 절제하고 묶어 버리는 불임화 수술을 받았다. 강제로 인간의 권리와 선택권을 뺏겨 버린 그들은, 이런 입에 담기도 괴로운 일들을 겪고도 단단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에 저자는 궁금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삶을 묵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에 대해서. 그러던 중 저자는 그들이 삶 속에서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다정하고 섬세한 말과 행동, 따뜻한 표정들을 보게 된다. 데이비드 무리가 \’그들\’이 말하는 \’부적합성\’의 특성을 가졌다고,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단정 지어 피해자들에게 무자비한 일들을 저질렀지만, 그들은 서로에겐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며 소중한 존재였다. 그에 저자는 평생을 걸쳐 저자를 괴롭혀 온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또한 그녀는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분류학에 관한 책을 읽고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물고기\’와 \’어류\’라는 생물학적 범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분류학을 공부하던 캐럴 계숙 윤은 대학원 시절 \’분기학\’이라는 학문을 알게 되고, 이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우리가 물고기라고 생각하던 생물들은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로써, 그 광기 어린 인간이 평생을 바쳐왔던 어류 연구들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다. 여태껏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어 왔던 어류라는 종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한 저자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잡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 -189p
\’민들레 법칙\’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일생을 거쳐 괴롭도록 궁금해 해왔던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민들레 법칙은 세상을 확실성과 확정성이 아닌, 수정이 가능한 유연함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조언을 한다. 이 세계는 어떤 것이 필요하고 쓸모없는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와 같은 일들이 기계처럼 정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고집스러운 한 가지의 관점은 우리를 자기기만과 낙천성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또한 물고기, 즉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믿고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원초적인 회의를 가지고, 새롭고 경이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발붙이고 서 있는 이 세계를 우리가 결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며 우리가 멋대로 세상의 질서를 만들려고 해서도, 그리고 그것들을 무심하게 믿어서도 안된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전한다.
우주에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고 무의미하며 점 위의 점에 존재하는 보잘것없는 인간일지라도, 나의 이웃, 나의 가족,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점 위의 점 보다는 훨씬 더 큰 존재라고, 아무리 우리가 작디작은 존재라도 어떤 이에게는 한 세계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필자와 독자는 동시에 깨닫는다. 바닥을 버텨 올리는 중력을 함께 나누는 것. 서로를 지탱하는 인력을 나누는 것. 이 모든 사소하지만 거대한 일들이 우리의 중요함을 상기시키고 존재의 이유가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소제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는 \’신의 기계적 출현\’이라는 의미로,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 마지막 상황에 등장하는 신의 명령으로 인해 상황이 해결되는 극작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질서는 온통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멸망. 그리고 결국, 우리는 중요하다는 사실. 이것이 필자가 삶의 이유를 쫓아 떠난 여정 중 가장 마지막 순간에 갑작스러운 \’신의 출현\’과 같이 찾아온, 존재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어릴 적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 우주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존재의 이유와 마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신에게만 갇혀 있던 작디작은 세계가 갑작스럽게 우주의 크기로 확장되면서 막연하고 거대하게 짓누르던 두려움.
그때 우리는 우리가 이 우주에서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광활한 우주와 작은 우리.
이 깨달음은 마냥 생각 없이 뛰어놀던 우리를 혼돈과 우울 속에 빠트리고,
존재의 의미와 삶의 이유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 막막한 의문에서 우리는 각자의 ‘해답’으로 이 거대한 세상을 살아 나간다.
어떤 이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될 것이다.
그 작은 하나의 의미가 이 커다란 세상을 받들고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중요하고 소중하며, 이 황량하기만 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